주가 쓰시겠다하라(눅19:28-40)

Apr 01, 2007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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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순종-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위한 예루살렘 입성을 위하여 여러 사람과 사물이 쓰임 받는 가운데 먼저 제자들의 순종이 있습니다. 제자들의 순종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순종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포기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의 포기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이 되고, 내 속의 말씀이 나의 말로 나타나고, 나의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천지만물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고, 섭리되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니까, 말씀대로 나귀가 있었고, 말씀대로 말했더니, 말씀대로 허락되었습니다. 반드시 말씀대로 됩니다. 말씀에 대한 체험과 말씀의 생활화가 정상적인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십니다.

나귀임자의 순종은-하나님의 물질적 요구에 대한 순종입니다. 우리의 순종은 물질적 순종으로도 나타나야 합니다. 물질적 순종을 위해서는 소유의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불순종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은 임의로 언제라도 주실 수도 가져가실 수도 있습니다. 소유적 순종은 풍성히 주시는 넘치는 삶이요, 불순종은 터진 웅덩이와 같이 물이 저장되지 않는 기근의 삶입니다. 물질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물질로 인한 하나님의 주되심을 부정할 때, 모든 소유의 상실과 아울러 존재 상실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나귀의 순종은-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순종을 위해서는 내 목적을 포기해야 합니다. 나귀는 원천적으로 존재 목적이 자기 자신의 목적이 아니라 주인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 합니다. 인생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선하게 쓰임 받느냐, 악하게 쓰임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악하게 쓰임 받는 사람은 저주와 사망의 결과가 있고, 선하게 쓰임 받는 사람은 축복과 생명의 결과가 있습니다. 세상적 목적 추구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불순종이 되고 육신적 목적도 하나님의 목적도 실패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목적을 추구하면 육신의 목적까지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의 순종은-사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사명 감당은 생명의 포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명은 철저히 생명의 포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인생에게 생명을 주기 위한 사명으로서 예수님의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망 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영생을 위한 댓가를 지불 하시는 것입니다. 저주 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축복을 위한 댓가를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순종할 때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희생 없는)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나의 순종은-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며, 순종의 결과인 축복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는 것입니다. 누구를(남을) 위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는 전혀 지장 받지 않습니다. 사람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여부는 나 자신의 존재에 복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가 결정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는 영원한 자존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