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
베드로전서에는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냥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도님 안에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혹 성도님 가운데 내게는 소망이 아예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분이 없기를 소원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소망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신앙생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믿음, 사랑, 기도? 여러 가지의 답을 말하실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모두가 맞는 답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소망의 중요성에 대해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소망이라는 것은 그저 의미를 생각하자면 한없이 추상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으로부터 오는 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를 들어 2차 세계 대전 때에 한 포로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프랭클린이라는 유태인의사가 포로수용소에 잡혀왔습니다. 그가 그 수용소 생활을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많은 질병으로 혹은 고문으로 쉴 새 없이 죽어 가는 상황들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열악한 상황을 이겨나가고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포로들은 바로 언제든지 없어져 버리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와 질것이라는 소망을 간절히 품고 바라고 그것으로 위로와 힘을 삼은 자 들이였습니다. 또 그 외의 많은 예들을 볼 때에도 소망의 힘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정에서도 부모님들이 그토록 희생하는 것은 바로 부모님의 희생으로 자녀들이 잘 될 수 있다는 소망 때문입니다.
이토록 소망은 어마 어마한 위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에 소망중 산 소망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깊이 생각해 볼 때에 산 소망이 있듯이 그 반대에는 죽은 소망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류가 만약 사람들이 소망한데로만 흘러 왔다면 지금은 완벽한 세상이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루어지는 소망이 있는가 하면 이루어 지지 않는 소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벧전1:3절에서 강조하는 산소망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소망입니다. 생명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행동하고 성취할 수 있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후반 절을 계속 읽어 내려가면 더 자세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늘의 기업을 받게 되었고, 5절에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6절과 7절은 삶 가운데 있는 수많은 시험들이 오히려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더 유익이 되며 상급이 될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무나 이상적인 약속들이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것이고 소망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기뻐하고 감사하면 반듯이 이 소망하는 일들이 이루어 질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소망의 보증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 소망을 살아 있는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반드시 이루지기 때문입니다.
닉 부이치치라는 사람의 간증을 동영상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 삶이 이 산 소망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불가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약속을 보고 반듯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