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의미 4가지
생존과 목적 - 기계화 될수록 인력으로 하는 일이 감소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많아질 것 같으나 반대로 더욱 바빠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활에 얽매어 바쁘게 살다보면 삶의 의미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삶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살아 있는 것이냐, 하나님이 살려 주시는 것이냐에 따라 삶의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생명의 창조자요,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존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이유를 알아야 삶의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는 인생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창조주의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사람 스스로의 목적은 가치에 있어 생명가치 이상의 것이 없으나, 하나님으로 비롯된 목적은 생명가치 이상의 목적으로써 참된 목적이 됩니다. 영생의 삶은 목적 또한 영원해야 합니다. 영원한 목적은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평생토록 쫓아다닙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좇아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헛된 것을 좇고 있는지, 헛되지 않은 것을 좇고 있는 것인지, 일시적인 것을 좇고 있는지, 영원한 것을 좇고 있는지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존과 능력 - 갈렙은 광야에서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생존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광야는 생존이 가능하고, 생존하기에 적합한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존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생존이 불가능한 곳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생존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환경으로 인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좋은 환경, 적합한 환경이라 해도 저절로 생존이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적 조건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환경 때문에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죽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생명을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환경이 아무리 좋고, 모든 것이 풍성해도 생명은 끝나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환경)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환경도 두려워하거나,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환경 때문에 웃었다 울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열악한 상황일수록 기대가 큰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고, 더욱 완벽하게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생존과 가능성 - 계속해서 갈렙은 말합니다. “보냄을 받은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이말 속에서 또 하나의 생존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존은 하나님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그때나 이제나 변함없는 불변의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어떠한 상황(환경)에서도 동일한 가능성을 가집니다. 근본적으로 환경(상황)이 내 인생의 존폐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이 나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시는 분입니다. 없는 것을 얼마든지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불가능이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능성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앞길에 있는 불가능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의 문제입니다. 광야라는 불가능성을 가진 환경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시고저 합니다.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문제 앞에서 위축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생존은 단순한 목숨유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요, 그 가능성이 나에게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생존과 승리 - “그곳에는 아낙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좇아 내리이다.”하나님의 존재하심은 절대 승리, 절대 형통, 절대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상대(적)가 아무리 크고 강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궁극적으로 패배하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승리를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은 패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를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나 자신이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방해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해자가 되고, 장애물이 되는 순간, 내 자신이 무너지고 파괴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삶이 패배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위하여 철저히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역사하시면 승리는 필연적인 결과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필연적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