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야 나오라①

Apr 18, 2010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요11:1-11)

병든 자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 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나사로의 누이들이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면서 전달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랑 하시지 않는 사람만 병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도 병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 하시는 사람도 병들 수 있고 문제와 사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문제와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솔하게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죄가 있느냐 없느냐, 죄가 크냐, 작으냐 속단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건과 문제가 발생할 때, 기본적으로 점검할 사항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면 얼마나 사랑하느냐? 에 대한 점검이 중요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이해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모든 문제를 초월하는 관계입니다.

죽을 병, 영광을 위한 병 - 모든 사건과 문제는 원인이 있고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께 세신바 되었습니다. 나사로가 병든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병(문제)이 낫느냐, 안 낫느냐 또는 어떻게 해야 낫느냐 등의 문제 해결에 대한 모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더 중요합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먼저 생각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나님의 영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 하시느냐의 문제입니다. 매사에 문제의 해결보다 문제의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문제해결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에 달려 있습니다.

문제의 발생과 진행(이틀을 더 유하시고) -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발생을 무조건 나쁜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편견을 조심해야 합니다. 시련과 연단은 좋은 의도에 의해 허락된 것입니다. 물론 문제 발생이 우리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유익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발생된 사건과 문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진행되어집니다. 문제 발생이 그렇듯이 문제의 진행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됩니다. 모든 문제(사건)는 우리 자신의 예상대로가 아니라 예상 밖으로 진행됩니다. 나사로를 본래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이틀을 더 유하시면서 시간을 끄십니다. 결국 나사로가 죽습니다.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발생된 후 진행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악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가 호전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악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낮에 다니는 자, 밤에 다니는 자 -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으신 후에 이틀을 더 머무시다가 보다 빠른 코스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유대로 가자고 하실 때 제자들이 유대인들의 방해가 있는 위험한 길이라고 만류 하지만 듣지 않으십니다. 물론 세상에는 환경적으로 안전한 길이 있고 위험한 길이 있습니다. 환경적으로 또는 상황적으로 안전한 길이 절대 안전한 길이 될 수 없고, 반대로 위험한 길이 절대 위험한 길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말에 대하여 예수님이 대답 하십니다. 밤에 다니는 자는 실족하나 낮에 다니는 자는 실족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사는 사람은 모든 환경에서 절대 보호하심이 있으므로, 절대 안전한 삶이 되고, 어두움에 다니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절대 안전하다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는 절대 위험한 길인 것입니다.

나사로가 잠든 것이냐, 죽은 것이냐? -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지체 하시는 동안 나사로는 죽고 맙니다. 이때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잠들었으면 스스로 깨어 일어날 텐데 갈 필요가 있냐고 반문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다시 “죽었느니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잠든 사람과 죽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이며, 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잠들었다고 표현 하셨는가? 죽은 것을 불가능이라고 한다면 잠자는 것은 가능을 말합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 잠자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죽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불가능을 얼마든지 깨울 수 있는 잠정도로 보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불가능을 죽음으로 보는 것은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인생의 승부는 실력보다 시각에 달려 있습니다. 실력이 있어도 불가능하게 보는 사람은 패배할 수밖에 없으나, 실력이 없어도 가능하게 보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각이 믿음의 시각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