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문둥병

Jul 04, 2010
주일대예배
문봉주 목사님
구절: 
막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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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싫은 사람, 고통을 만드는 사람 - 미국의 경우 년간 아스피린 소비량이 무려 3만 톤에 이르며 전세계 마취제의 50%를 미국이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합니다.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통이 없을 수 없는 현실을 살아야 하는 모든 인생은 고통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선악과 사건은 고통을 원하지 않는 인간이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낸,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을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고통을 해결하고자한 시도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분쟁하는 것으로 발전하여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고통을 싫어하나 스스로 고통의 원인이 되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 구원받지 못한 인생 모습이요, 죄의 결과입니다. 육체의 질병 역시 본질적으로 죄의 결과입니다. 고통을 싫어하는 인생이 고통을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이 모든 인생의 딜레마요 인류의 숙제입니다. 사람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만 사람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만이 해결대책이 되십니다.

고통을 느끼는 사람, 못 느끼는 사람 - 질병에 걸리면 통증이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질병에 걸리면 당연히 느끼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도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문둥병(나병: 한센병)이 그렇습니다. 통증을 느끼는 일반질병보다, 문둥병이 더 고통스러운 것은 느껴야 할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육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심각한 상태에서도 통증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육체의 통증을 못 느끼는 이중고통의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영혼의 문둥병입니다. 요한계시록3장 17절에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모르고 오히려 그 반대로 알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가운데 있으면서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이중의 질병 상태에 있는 불행한 교회 시대가 말세교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적으로 깨닫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믿음을 지키는 성숙한 신앙은 스스로 깨닫는 신앙입니다.

문둥병의 치유 ①(예수께 와서) - 병자가 치유 받는 첫걸음은 의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치유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의사를 찾지 않는다면 그의 치유는 불가능합니다. 의사에게 나와야 합니다. 어떤 시도와 노력도 의사를 찾은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헛수고 일뿐입니다. 그의 삶에 누구보다 월등한 성공적인 일이 있다 해도 예수를 만나는 일보다 성공적인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날만한 때에 찾으며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불러야 합니다.(사55:6).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만나는 것은 아무 때나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를 분별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때를 잡아야 합니다. 전심으로 찾고 찾아야 합니다. (렘29:13)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합니다. 세상일이나 예수님을 찾는 일이나 한결같이 요구되는 자세가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②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 천신만고 끝에 예수님께 나왔다 해도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치유를 요청하는 자세입니다. 예수께 나아와 간구하는 문둥병자의 자세를 자세히 보십시오. 꿇어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여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15). 우리 자신 안에 하나님 뜻을 거부하는 견고한 진이 있습니다. 그 견고한 진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물리적으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 문둥병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하고 항복해야 합니다. 인생이 저주받은 비유가 하나님의 명령(뜻)앞에 대항했고 거역했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③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 주님께 나아온 이유가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지만 해결을 원하는 것이 나의 뜻이기 이전에 주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나의 원하는 바를 고집하는 것은 미성숙한 믿음입니다. 성숙한 믿음은 주님의 뜻을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고통을 제거해주는 것만이 축복이 아니고, 그대로 인내하고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이 더 큰 축복일 수 있습니다.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나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을 묻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의 뜻을 들어주시기에 앞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먼저 복종시키는 믿음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소원과 주님의 소원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소원의 일치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시면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므로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뜻에 합당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내 뜻대로 역사 하시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역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