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
포도원과 품꾼 - 포도원은 좁은 의미로는 교회이며 넓은 의미로는 세상 전체를 말합니다. 품꾼은 모든 사람, 또는 성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전체 의미로든, 교회 의미로든 포도원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은 품꾼을 고용하여 포도원 전체를 경영합니다. 주인은 경영에 관한 계획을 세우고 분야별로 일꾼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사업을 추진해 나갑니다. 세상 모든 나라가, 또는 모든 교회가 사람이 운영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운영하시면서 모든 사람에게 임무를 맡기신 것입니다. 포도원의 경영 계획에는 장소와 시간의 계획이 있습니다. 품꾼은 장소와 시간에 있어 주인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주인의 뜻에 따를 때는 주인의 칭찬이 있고 수고에 대한 보상이 있고 성공적인 삶이 되지만 주인의 뜻을 무시하고 임의로 한다면 주인의 책망이 있고 수고에 대한 보상도 없고 실패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성도 아닌 세상 사람도 마찬 가지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의 중요 요소인 때와 장소문제가 자기 뜻대로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분명히 내 인생이지만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 정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품삯 지불 - 해 뜰 때 시작된 일이 해가 저물어 끝나고 품삯을 지불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해가 저물 때가옵니다. 하루의 해가, 일 년의 해가, 일생의 해가 지고 결산할 때가옵니다. 포도원 주인이 결산하듯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결산하십니다. 호리라도 갚지 않고는 결단코 나오지 못하리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주인이 품삯을 지불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약속대로, 또 하나는 상당하게입니다. 약속대로의 품삯(기본구원) -일이 끝난 후 품삯을 지불하면서 나중 온 사람부터 먼저 온 사람까지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지불합니다. 일단 예수 믿은 사람은 먼저 믿었든 나중 믿었든 천국에 가는 것, 영생을 얻는 것은 똑같습니다. 상당하게 주는 품삯(상급구원) -나중 온 사람이 받은 한 데나리온과 먼저 온 사람이 받은 한 데나리온은 적어도 12배의 차이가 납니다. 구원은 같으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상급이 다릅니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위에 신앙의 집을 세우고 나서 마지막날에 하나님이 불로 시험하실 때 타지 아니 하면 상을 받고(금, 은 보석으로 지은 집), 불에 타면 해를 받습니다.(나무, 풀, 짚으로 지은 집) 상을 받는 영광스런 구원이 있고, 불 가운데서 상이 없이 겨우 구원받은 부끄러운 구원이 있습니다.
평가의 시각 - 나중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본 먼저 온 사람은 더 많이 받을 줄 생각했다가 똑같이 주자 원망하며 항의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미 일을 시작할 때 체결된 약속대로 정당하게 이행했음을 밝힙니다. 약속을 이행한 주인을 악하게 보는 잘못된 시각을 지적합니다. 먼저 온 품꾼은 자기와 남을 비교 하는 상대기준에 의하여 주인(하나님)의 처사를 평가하고 비난합니다. 주인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평가 하지 않고 당초에 약속된 기준에 의하여 처리한 것입니다. 말 많은 사람은 먼저 온 사람입니다. 자신의 공로를 과소평가 했다는 것입니다. 품삯을 받을 수 있도록 포도원에 들어오게 된 것부터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주인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 온 품꾼은 말이 없습니다. 포도원에 들어온 것도, 분에 넘치는 품삯도 모든 것이 은혜일뿐인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같은 땅에 살면서 그 은혜가 얼마나 특별한지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축복인지 알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은혜를 잊고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고 불평과 원망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축복과, 계속적인 축복 -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이 일회적이냐 지속적이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포도원에는 단 한 번만 일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계속 필요합니다. 그날처럼 그다음 날도 일꾼들을 부르러 나갔을 때 또 부름을 받는 사람이 있고 더 이상은 부름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전 날에 주인이 약속을 지켰음에도 부당하다고 원망했던 사람(먼저 온 품꾼)은 주인의 부름에서 제외되고 주인의 처분(은혜)에 감사했던 사람(나중 온 품꾼)은 또 부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인과 그의 처사를 선하게 보느냐 악하게 보느냐, 감사하느냐 원망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지속되느냐 중단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원망, 불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전적인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연전연승하는 삶을 사느냐? 연전연패하는 삶을 사느냐? 역시 우리의 자세에 달렸습니다. 먼저 온 사람처럼 소극적으로 하지 않고 나중 온 사람처럼 매일 마지막기회로 알고 열정으로 최선을 다할 때 매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중 된 자로써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써 나중되리라. - 간혹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처럼 먼저 부른 사람이 있고 나중 부른 사람이 있듯이.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온 사람에게나 나중 온 사람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무조건 똑같이 지불한 것 때문에 공평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먼저 온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니라 나중 온 사람에게도 같은 성공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먼저 오고 나중 온 것이 각자의 뜻이 아니라 주인(하나님)의 뜻입니다. 기회가 먼저 주어졌느냐 나중에 주어졌느냐에는 불공평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만 성공하느냐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반드시 성공하느냐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반드시 실패하느냐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왔기 때문에 끝까지 1등하고 나중에 왔기 때문에 끝까지 꼴찌 한다면 불공평한 것입니다. 먼저 온자도 꼴찌 할 수 있고, 나중 왔어도 1등할 수 있게 하신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