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땅, 밟는 땅
내가 주는 땅으로 가라(하나님이 준비하는 인생, 내가 준비하는 인생) - 인생의 미래에 대하여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준비해 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삶은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이요 예수 믿지 않는 삶은 스스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삶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주신 복된 삶이요 형통한 삶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삶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미래를 해결해야 하는 고아와 같은 삶입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이 양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삶이 구원받은 삶입니다. 양은 스스로의 미래를 예비할 수 없고 자기 인생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목자만이 양의 길을 알고 인도할 수 있습니다. 양 스스로 가는 길은 위험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목자에 대한 순종은 목자를 위해서가 아니고 양 스스로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곳, 하나님이 허락한 때 -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가나안 땅은 사람이 정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곳입니다. 나를 위한 것이지만 정하는 것은 하나님 권한에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 하실 때 공간을 정하시고,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동식물로 하여금 살도록 하신 것처럼 우리 모든 사람의 삶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하여 삶이 정해집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든지 결정적인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곳으로 간 아브라함, 요셉, 엘리야는 형통과 축복과 승리의 삶을 살았지만, 그 반대로 간 요나, 롯, 나오미는 실패와 패배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정한 방향으로의 출발은 불행의 시작, 저주의 시작, 실패의 시작, 패배의 시작이요.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으로의 출발은 행복의 시작, 축복의 시작, 성공의 시작, 승리의 시작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말씀의 불변성, 공평성) -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말씀은 모세에게 주셨던 말씀이요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약속은 모세에게 주셨던 약속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오늘날 나에게도 전혀 틀리지 않고 다르지 않은 말씀과 약속과 원칙과 보장을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와 능력과 보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말씀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똑같이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병이어의 기적은 당시의 소년뿐 아니라 다른 사람, 오늘 내가 그 말씀대로 하면 오늘도 똑같이 역사 하신다는 것입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대로 하면 베드로뿐만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도 똑같이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과 보장과 원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결코 차별하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주는 땅과 밟는 땅의 함수관계 -(나의발, 남의발) 주시는 땅과 밟는 땅이 일치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방향이 일치해야 주신 땅이 나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방향이 일치하지 않으면 많은 노력을 했어도 노력한 만큼 실패한 것뿐입니다. 방향이 일치해야 노력한 만큼 성공이 됩니다. 방향은 하나님이 정하시지만 그 방향에 대한 분별과 선택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으라고 했습니다. 내 발바닥으로 밟아야 내 땅입니다. 남의 발바닥으로 밟으면 남의 땅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밟아야만 합니다. 인생은 근본적으로 대신 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남이 밟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내 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실패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내가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축복받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자동적으로 축복받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성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 나는 저절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실패하게 됩니다.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두 걸음 -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입니다. 한꺼번에 열 걸음, 백 걸음을 걸을 수도 없고, 열 걸음 백 걸음을 건너 뛰어 생략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질서와 순서가 있고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기본요소가 있습니다. 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소분자와 수소분자가 필요하고 색채를 위해서 삼원색이 있어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약속받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반드시 한 걸음, 한 걸음이 필수요소입니다. 천 걸음도 만 걸음도 한걸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걸은 만큼 땅의 면적은 확보됩니다. 한걸음은 한 걸음만큼, 열 걸음은 열 걸음만큼 땅이 확보됩니다. 주시는 복과 누리는 복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복을 허락하셨으나 누리는 것은 각자의 그릇 만큼입니다. 주신 땅은 무한해도 밟은 만큼 나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땅의 넓이만큼 보이는 땅을 밟게 됩니다. 마음의 땅의 면적이 밟는 땅의 면적입니다. 마음이 담대하고 커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발과 하나님의 발 - 5절에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일시적으로 또는 일정기간 동안만이 아니라 평생 동안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라고 단언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도 너(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육안으로 보기에는 내가 밟는 것만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이 밟으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나의 발로 말씀대로 순종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발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불 가운데 지나가도 물 가운데 지나가도 타지 아니하고 침몰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마음이 강하고 담대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요 약하고 두려우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하는 사람은 문제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하면 풍랑 위를 걸어가지만, 약하면 풍랑 밑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담대함이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