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의 원인 (2)

Feb 24, 2013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욘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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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은 은혜다 – 하나님이 막으신다면 반대 방향으로 잘못가고 있는 것이다. 잘못가고 있을 때 어느 것이 은혜이며 축복인가? 막는 것인가? 막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인가? 우리의 삶에는 종종 풍랑과 시련이 나타난다. 기쁜 일만 있는것이 아니라 괴롭고 슬픈 일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풍랑이 있기보다 없기를, 고난과 역경이 있기보다 없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의 원하는것과는 달리 없기를 원하는것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한다. 원하지 않은 고통과 고난들은 저주요 불행인가? 비록 나자신의 잘못 때문일지라도 그것은 불행과 저주로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잘못가는것을 알고 가던 모르고 가던 그것을 방치하지 않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는 분명히 은혜이며 축복이다. 하나님은 그 받으시는 아들마다 반드시 채찍질 하시고 징계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히12:6) 만일 징계가 없고 채찍질이 없으면 사생자요 아들이 아닌 것이다. 징계와 채찍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신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부류가 있다.(롬1:28) 하나님의 유기처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면 그들은 통곡해야 한다.

문제의 요소 – 문제에는 필연적인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원인과 답이다. 문제에는 반드시 발생 원인이 있다. 원인 없는 문제가 없고 답이 없는 문제가 없다. 필연적으로 원인이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답이 있다는 말이 된다. 문제는 답이 없는것이 문제가 아니라 원인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원인만 알면 답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모르면 답을 알 수 없다. 아모스 3장(3-8)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동행은 두 사람의 의합에서 비롯되고, 새가 치이는 것은 창애(덫)때문이며, 사자의 부르짖음은 사냥에 성공한 때문이요,성읍의 나팔신호는 위기 징조때문이요 재앙의 발생은 여호와의 허락하심 때문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세우신 종과 선지자들 비밀을 알리시고 시행하신다. 원인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영적 문제와 육적 문제가 있다. 영적 문제와 육적 문제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영적 문제는 항상 육적 문제의 원인이 되고 육적 문제는 영적 문제의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육적 문제의 상태를 통하여 영적 상태를 보여 주신다. 육적 상태를 보고 영적 상태를 깨달아야 한다.

깨닫는시점 – 지혜로운 사람은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이 아니다. 깨닫는 사함은 지혜로운 사람, 깨닫지 못하는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 지식도 깨달아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깨닫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내 자신이다. 선장이 깨닫고 지적해도 요나가 깨닫고 돌이켜야 한다. 남이 깨달아도 내가 깨닫지 못하면 풍랑은 가라앉지 않는다. 깨달아야 하는 시점이 있다. 완전히 침몰한 후가 아니라 침몰하기전이다. 완전히 상실한 후가 아니라 상실하기 전이다. 죽은 후가 아니라 죽기전이다. 세상에 존재할 때 깨달아야 한다. 세상을 떠난 후에는 깨달아도 이미 늦었다. 깨달아야 하는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풍랑 속에 있는 요나의 배처럼 침몰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침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것이다. 누구나 깨달을 때가 온다. 죽은 후다. 하나님 앞에 서면 불가항력적으로 깨닫게 된다. 깨닫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늦은 때이다. 깨닫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깨닫는기준 –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것을 보는것같은 소감을 말할 수 있다. 같은 예배 장소에 있어도 강단의 설교자의 위치가 오른쪽일수도 있고 왼쪽일수도 있는 이유는 앉아 있는 성도의 자기 자신의 위치때문이다. 설교자의 위치가 바뀐 것이 아니라 앉아 있는사람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같은 사건을 놓고 분석할 때도 서로 다른 분석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기준의 차이다. 같은 분석 대상에 대한 다른 분석 결과는 분석 기준이 달랐다는 얘기다. 풍랑의 원인을 파악할 때도 육적 기준으로 하느냐, 영적 기준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기준(영적 기준)에 의해 분석할 때, 정확한 원인이 파악된다. 영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하나님과 일치된 판단을 하게 되고, 육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하나님과 반대된 판단을 하게된다.육적 판단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정확하고 모든 사람이 동의해도 하나님의 말씀 반대 방향이며 영적 판단은 아무리 이해가 안되고 이치에 맞지 않고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된 방향이다.

누구로 인하여 – 누구의 죄인가? 천국가는 문제도 지옥가는 문제도 남의 죄와 관계된 문제가 아니라 나의 죄와 관계된 문제다.죄의 문제는 합리화 내지 정당화로 또는 책임전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내 자신의 회개만이 해결책이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한 것을 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신다(요일1:9). 자백은 하나님의 지적에 대하여 동의하고 인정하는것이다. 범죄 사실을 시인하는것이다. 천국은 회개한 죄인이 가는 곳이요 지옥은 회개 안한 죄인이 가는곳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요, 회개 안하는 사람은 부정직한 사람이다. 죄의 합리화와 정당화는 하나님을 불의한 존재, 부당한 존재로 여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용서가 가능한 죄가 있고 용서가 불가능한 죄가 있다. 죄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 여부에 있다. 아무리 큰 죄도 회개하면 용서 되지만 아무리 작은 죄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용서가 불가능하다. 나는 과거에도 문제 발생의 주인공이었고 문제 해결의 주인공이었으며, 미래에도 문제 발생의 주인공이며 문제 해결의 주인공이다. 회개의 주인공인 나에게 열쇠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