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뺨을 치거든

Mar 10, 2013
주일대예배
안인권목사님
구절: 
마5: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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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원인과 해결 – 구약의 율법에서 언급된 죄(악행)에 대한 형벌 규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과 대책을 본문에서 다루고 있다. 율법에서 언급한 동해, 동량보복법의 의도는 죄(악)에 대한 처벌의 필연성과 죄의 근절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악에 대한 근본 대책은 악의 처벌이 아니라 악의 해결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윤리 도덕문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죄의 문제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구원이 윤리 도덕문제 해결로 되는것이 아니라, 죄의 문제 해결로 되기 때문이다. ‘인자의 온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유념해야 한다. 죄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지만 죄의 해결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죄는 남과 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발생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사람이 거부함으로 그 관계가 무너지고 따라서 사람과 사람관계가 무너진 현상이 죄(악)의 만연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는 죄악의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화될 뿐이다.

정죄와 판단 – 뺨을 맞고, 속옷을 빼앗기고, 오리를 강제로 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냐를 판단하게 되고 누구의 잘못이냐를 가리게 된다.악에 대한 판단은 죄가 없는사람만 가능하다. 죄가 없으신 하나님만이 죄에 대한 판단을 하실 수 있다.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하나님만이 아시고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입장에서 판단한다. 가해자도 사건의 원인이 자기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모두가 맞는다고 하지만 모두가 틀린 말이다. 자기 입장에서 본다는 자체가 이미 공평성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만이 정확무오한 판단이다. 가변적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기 때문에 문제가 끊이지 않는것이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통치되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죄(악)의 해결이 인류문제의 해결이다. 죄의 해결은 사람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죄와악을 해결하는 유일한 대책이다.

율법의 방식, 은혜의 방식 – 남에게는 냉혹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것이 통상적인 사람 심리다. 신앙 세계에서도 그러한 현상을 보게 된다. 남을 향해서는 율법적 잣대를 적용하고 자신을 향해서는 은혜적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를 보게된다. 공평하게 남에게도 나에게도 율법적 잣대를 또는 은혜의 잣대를 적용하는것이 마땅함에도 두개의 잣대로 살아가는 모순을 저지른다. 남에게는 율법으로 대하고 나에게는 은혜로 대하는 불공평보다는 차라리 남에게는 은혜로 대하고 나에게는 율법으로 대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위해서라면 그 편이 훨씬 낫다.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타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를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남의 피해보다 나의 피해가 커 보이고, 나의 잘못보다 남의 잘못이 커보이는 이기적인 신앙생활은 사회에 악영향을 주고 악순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만, 남의 피해가 나의 피해보다 커보이고, 나의 잘못이 남의 잘못보다 커보이는 이타적인 신앙생활은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고 선순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남이 죄인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요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고백이 지속되어야 한다.

남에 대한 자세가 하나님에 대한 자세다 – 신앙생활은 필수적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고,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의 삶이 일치되어야 하고, 사람에 대한 자세와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일치되어야 한다.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고자 하는 만큼 나도 남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고자 하는만큼 남에게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뺨을 맞았을 때 같이 때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맞아라,속옷을 뺏길 때 안뺏기는 것이 아니라 더 주어라, 오리를 강제로 가게 됐을 때 안가는 것이 아니라 더 가라고 말씀 하시는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수준을 말하는것이며 우리의 삶이 항상 부족한 삶이 아니라 넘치는 삶을 누리는 것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남이 나에게 베푼 수준을 기준으로해서 베풀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시는 수준을 기준으로 해서 또는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수준을 기준으로해서 남에게 베풀라고 말씀하시는것이다.베풀 수 있는 SIZE가 받을 수 있는 SIZE다. 부족한 수준도 현상유지 수준도 아닌 넘치는 수준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다.

같은 문제(기회), 다른 결과 – 같은 피해가 발생했을 때, 남의 죄에 대한 처벌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수도 있고, 나의 죄와 잘못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수도 있다. 같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회가 될수도 있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기회가 될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은혜를 상실하는 기회가 될수도 있고, 은혜가 풍성해지는 기회가 될수도 있다. 상급의 기회로 삼을수도 있고 진노의 기회로 만들수도 있다.같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나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부정적인 것이 되고 반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나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긍정적인 것이 되는것이다. 남의 죄 때문에 내가 멸망하고, 남의 선행 때문에 내가 축복받고, 남의 노력 때문에 내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내가 멸망하고, 나의 선행 때문에 내가 축복받고, 나의 노력 때문에 내가 성공하는것이다. 남이 나에게 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한 것 때문에 나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