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주 5
홍수 대비한 방주 -- 방주의 필요성은 홍수 때문이다. 최종적인 심판의 홍수와 함께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복하기 위해서다. 교회라는 방주는 심판을 대비한 구원의 방편으로써 하나님의 지시와 설계에 의한것이다. 동시에 보편적인 의미의 방주는 공동체로써 가정, 국가등을 말한다. 일반 공동체 역시 하나님의 설계에 의한 구조인지 인간의 설계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문제라는 홍수를 극복할 수도 있고,침몰할 수도 있다. 하나님도 인간도 복수 형태(공동체)로 존재이다.하나님은 성삼위 일체로, 사람은 영혼육 일체의 공동체 형식으로 존재한다. 외형적으로 단수 형태지만 내적으로는 복수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설계에 의한 신본적 System은 홍수를 능히 감당하지만 사람에 의한 인본적 System은 홍수를 감당할 수 없다. 가정도 교회도 신본적 system이어야 세상의 풍랑을 이길 수 있다. 세상의 풍랑을 이길 수 있어야 스스로의 삶을 승리하고 침몰하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방주완성을 위한 질서 -- 방주의 질서는 상하의 수직관계가 있고, 좌우의 수평관계가 있다. 기본적인 질서는 상하의 질서다. 하나님과의 관계 질서가 모든 질서의 기본이다. 교회에서 주의 종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 관계를 훈련하고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훈련시키고 사회에서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하나님 관계을 연습하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회 질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철저히 훈련 시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게 하신다. 수직적으로 노아는 하나님으로 부터 명령을 받아 그대로 자녀에게 전달하고 자녀는 그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철저한 질서가 유지되는 공동체는 이미 성공과 승리가 보장된 공동체다.방주에 대한 지시와 설계는 오직 노아에게만 주셨다. 노아의 인간적 자질과 관계없이 노아의 가족 모두는 그의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들이 사는 길이다. 노아가 주의 종이라면 나머지 가족은 제직이며 성도들이다. 주의 종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순종의 질서의 확립이 모든 성공의 절대 원리요 비결이다.
방주완성을 위한 역할분담 -- 방주는 여러가지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 다양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동원되어 주어진 분야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주어진 위치가 있고 맡겨진 일이 있게 된다. 인생은 다양한 삶의 환경에 있게 되고 각자 다른 위치에서 다른 임무를 감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은 각자의 위치가 있고 할 일이 있다. 부모의 위치와 자녀의 위치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고 역할을 바꿀 수 없다. 남편과 아내 역시 위치와 역할을 바꿀 수 없다. 누구에게나 선택한 것이 아닌 천부적으로 주어진 위치와 역할이 있다. 부모의 위치와 자녀의 위치가 선택에 의해서 정해진 것이 아니요 불가항력적인 창조주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주어진 위치와 임무가 어렵든지 쉽든지 조건이 좋든지 나쁘든지 숙명적인 문제다. 지혜롭고 현명한 자세는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공동체와 충실히 감당하지 않는 공동체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경쟁 상대의 실력 여하에 따라 자신과 소속한 공동체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실성과 책임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방주의 완성을 위한 협력 -- 각자에게 주어진 위치와 역할은 자신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것인 동시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역할에 대한 불성실은 자신에게만 피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피해가 되고 실패의 원인이 된다. 이기적인 삶이 있고 이타적인 삶이 있다. 불신자의 삶의 특징은 이기적이다.불신자 중에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극히 드문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이기적이기때문이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다른 점 가운데 대표적이며 필수적인 것은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타적인 희생에 의하여 구원받은 신자는 기본적이며 의무적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살게 되어 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계시다면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협력하지 않는 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반대하는 것이요 방해하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 하신다.협력하기 위한 전제는 희생이다. 희생을 각오해야만 협력이 가능하다.
강한 방주, 약한 방주 -- 방주는 얼마나 크냐 작으냐보다 얼마나 견고하냐가 관건이다. 크기는 이미 결정되어진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견고성과 성능이 확인되어야 한다. 견고성과 성능은 구조에 있다. 외형 보다도 내부 구조가 견고성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구조와 조직이 하나님의 지시와 기준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일반 건물의 견고성도 설계에 철저히 충실했느냐에 달려 있다.하나님이 주신 설계는 완전한 설계이다.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설계로 말하면 완전한 설계요 계획으로 말하면 완전한 계획이다. 인간적으로 완전한 설계와 계획은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의 설계만이 완전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성공은 완벽한 실패를 말한다. 성공할 수록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하는 것 같아도 말씀대로 하고 있다면 분명히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방주는 강한 방주여야 한다. 말씀에 철저한 방주가 강한 방주다. 말씀에 철저한 교회가 강한 교회다.교회는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 한다. 단순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영적 영토를 탈환해야 하고 영적 포로를 찾아와야 한다.교회가 약하면 탈환은 커녕 마귀의 공격에 함락을 면키 어렵다.교회는 유람선이 아니라 전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