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II
두 종류의 쓰임 -- 성경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등장 인물들은 스스로 등장했다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에 의해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역할을 감당하게 하시며 그 인물 가운데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성경 전체가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만 룻기가 속해 있는 사사시대 역시 인간의 타락과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징계로 인한 인간의 회개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징계와 구원의 역사에 필연적으로 쓰임받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쉽게 말하면 징계를 위해 악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있고 구원을 위해 선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있다. 셀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결국 축복의 샘플 역할을 하는 사람과 저주의 샘플 역할을 하는 사람, 승리의 샘플 역할을 하는 사람과 패배의 샘플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전적인 하나님의 예정하심 가운데 있지만 각자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치를 아는 삶 -- 어떠한 삶이 현명하고 똑똑한 삶이며 어떠한 삶이 어리석은 삶인가? 지능지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유무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향해 '어머니를 떠나라 돌아가라 하시지 말라'고 간곡히 하소연 한다. 남편이 생전에 있든지 없든지 며느리된 위치는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자기 위치를 안다는 것이다. 사람의 존재 방식은 공동체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이 만드실 때부터 홀로가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해야만 살 수 있게 하셨다. 공동체 생활을 성공하는 기본 요소는 자기 위치 파악에 있다. 위치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 주시는 분이 있다.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 주어진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공동체 생활의 성공이 시작된다. 가정 생활의 성공도 가족 각자의 위치를 알고 지키는 것에 있고 교회 생활도 가가자의 위치를 알고 지키는 것에 있다. 목자는 목자의 위치를 알고 지켜야 하고 양은 양의 위치를 알고 지켜야 한다. 모든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는 위치 파악에 달려 있다.
방향을 아는 삶 -- 삶의 성공을 위해서 분명해야 할 것이 있다. 방향이다. 방향이 분명치 않으면 분명하게 만나는 결과가 있다. 잘못된 종착역이다. 상식적인 진리가 있다. 방향이 잘못되면 빠를수록 빨리 실패하고 방향이 정확하면 빠를수록 성공이 빠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다. 결정적인 것은 방향이다. 지금 가고있는 방향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른 기준을 확보하는 것이다. 인생의 방황은 상황의 좋고 나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향이 맞느냐 틀리느냐에 있다.방향의 정확성은 가지고 있는 기준의 완전성에 있다.완전성은 그 기준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냐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냐에 있다. 룻은 자기가 설정한 방향을 추구하지 않고 어머니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자 한다.'어머니 가시는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고' 갈 곳이 없어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를 밝힌다.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좌면우고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하나님만을 따르는 사람을 쓰신다.
가치를 아는 삶 -- 짐승의 삶에는 존귀한 삶과 비천한 삶이 영광스런 삶과 치욕스런 삶이 따로 없다. 사람의 삶만 존귀와 영광과 천함과 모욕이 있다.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오직 사람뿐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 가운데 가치를 아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 가운데 하나가 가치의 타락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짐승과 버러지의 영광을 혼동하게 된 것이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3)같은 예수를 믿지만 금,은,보석의 집을 짓는 사람있고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전3:12) 보화를 발견한 삶이 있고 발견 못한 삶이 있으며,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이 있고 발견 못한 사람이 있다.(마13:44-46) 룻은 인간적인 욕망을 따라가지 않고 어머니를 통한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 간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는 삶을 결단한다. 어쩌면 육신적으로는 매우 불행하고 고통스런 삶이 될 수 있음에도 그 길을 결단하는 것은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사명을 아는삶 -- '어머니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룻은 마지막 죽음을 무엇을 위한 죽음으로 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힌다.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는 마지막이며 최종적인 비장한 질문이다.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생명의 가치를 스스로 규정하는 존재는 사람뿐이다.하나님은 그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셨다.생명 이상의 목적을 위해 살수도 있고 그 이하의 목적을 위해 살수도 있다. 육신의 생존의이유는 영적 생명때문이다.육신의 생명을 영적 생명을 위해 사용하는가 아닌가? 영혼을 살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영혼을 죽이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맡기신 어머니의 삶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는 룻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어야한다. 자신의 삶을 희생한 룻의 삶이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메시아 탄생을 위한 삶이 될 줄은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사명을 위해 희생을 감당했던 삶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