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탄생 장소 --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시지 않고 짐승이 사는 마굿간에 태어나셨다.가장 존귀하신 분이 가장 누추한 장소에서 태어 나셨다.원천적으로는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에 의한 일이다.(미5:2)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찾았지만 이미 성경에 예언된 장소는 베들레헴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말씀에 의해 상황이 전개되고 그 상황에 의해 말씀은 성취된다.일단 말씀이 주어지면 환경과 상황은 말씀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환경과 상황에 의해 말씀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이 말씀을 이루어간다.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시되 가장 낮은 곳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다. 모든 숙박 시설이 만원이 되어 불가피하게 찾아간 곳이 마굿간이었다. 여관들이 예수님을 거절함으로 마굿간으로 가게 된 것이다. 유대 민족이 예수님(복음)을 거부한 결과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방인의 때가 찬 후에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비어있는 구유 -- 마굿간에 갔어도 구유가 비어있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 누우셨을 것이나 마침 구유가 비어 있었다.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다. 세상에 오시기 위해 하나님 본체이신 자신을 비우신 것이다. 부유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가난한 자로 부요케 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 역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뇨'(롬8:32) 모든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우리 또한자신을 비워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달리 나쁜 것( 온갖 탐욕,부정 , 정욕,사욕)들을 비워야 예수님을 받아 들일 수 있다. 우리 자아(모든 이론,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과 모든 생각을)를 비워야 한다. 비우는 작업이 성공해야 예수님 영접이 가능하고 예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안에 성공할 수 있다. 영적(혼)으로 비우기 위해 하나님은 육신적(물리적)으로 비우신다. 육신적으로 비워지면 영적으로 비워진다. 영적으로 비워져야만 예수님 영접이 가능해진다.
고정된 구유 -- (엡3:17)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골2:7)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의 위치와 자리는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같은 집을 지어도 홍수와 비바람에 무너지는 집이 있고 무너지지 않는 집이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위치가 있다. 그 위치와 장소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흔들리느냐 아니냐 쓰러지느냐 아니냐에 있다. 비바람과 홍수와 같은 환난과 시험은 우리의 견고함을 확인하게 해준다. 시련과 시험이 없으면 자신의 믿음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문제에 부딪혀 보면 비로소 자신의 믿음을 알수 있게 된다. 주어진 자리에서 요동치 않고 성을 쌓고 있느냐 무너진데를 막고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이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킬 때 그 공동체는 견고한 공동체이며 그 나라는 견고한 나라이다. 각자가 자기 자리를 생명을 걸고 지키는 것이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길이다. 모든 성공과 승리의 비결이다.
낮은데 있는 구유 -- 상식적으로 구유는 높은데 있으면 안된다. 낮은데 있어야 한다. 절대 높은 곳에 있으면 안된다. 높은 곳에 있으면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양들이 편하게 먹이를 먹으려면 높이가 낮아야 한다. 다리를 다친 양도 어린 양도 키가 작은 짐승도 어려움 없이 먹이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부담없는 높이여야 한다. 가장 작은 짐승도 다가갈 수 있는 낮은 높이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40년간 광야에서 연단한 핵심 목적이 낮추기 위함이었다. 높아진 것은 교만이요 낮아진 것은 겸손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낮아진 사람, 겸손한 사람이다. 교만한 사람은 절대 쓰시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는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요 순종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요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재물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존귀하게 쓰신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도 교만한 사람은 물리치신다.
열려있는 구유 -- 항상 열려 있는 구유는 누구나 맞아줄 수 있고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는 구유다. 아무리 훌륭한 구유라해도 닫혀 있으면 쓸 수가 없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사람을 구별하지도 차별하지도 않으셨다. 모든 사람에게 문을 활짝 열고 부르신다. 언제 어디서라도 환영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열고 닫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닫고 여는 것과 관련이 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우리가 인간 관계에서 열고 닫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삶이 닫히지 않기를 원하다면 남과의 관계가 닫히지 않아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관계를 열어 놓는 것이다. 언제나 줄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누구나 환영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람이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은 우리의 입을 열고 닫는것에 의해 하나님이 채우시기도 하고 채우지 않으시기도 한다는 말이다. 열고 닫는것은 나의 일이요 채우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