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III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 인생이 힘든 이유는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있고 상대 중에는 좋은 사람만 있는것이 아니라 나쁜 사람(악한)이 있어 내 잘못이 없음에도 상대의 잘못으로 문제가 발생되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피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피할 수 있음에도 구태여 맞붙어 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상황 가운데 있다는데 있다. 악한 일에 대하여 악한 자에 대하여 취하는 자세가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시종일관 강조되는 것은 천국시민의 삶의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사람과는 정반대의 방식과 원리에 의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구원의 방법이 세상을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하는 방법에 의해서이다. 결국 세상의 문제는 악한 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 해결이 안 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세상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적은 악한 사람보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야하는 우리를 향하고 있다.
오른 뺨을 치거든 -- 때리는 사람이 있어서 맞는 사람이 있게 된다. 모욕을 주는 사람이 있어서 모욕을 받는 사람이 있다. 연단을 받는 것은 연단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죄와 잘못으로 인한 징계와 처벌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죄도 잘못도 없는 무고한 모욕과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으로 인해 유사 이래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 왔고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는 악한 자를 징계하고 격리시켜 사회 안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고의적인 악행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연단하셔서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임받으려면 먼저 연단과 훈련을 통해 온전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높은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받으려면 철저히 낮아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낮아질수 있는 사람이 남을 높이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다. 오른 뺨에서 왼 뺨까지 부분적인 연단에서 전반적인 연단으로 일시적인 연단에서 최종적인 연단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평화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속옷을 뺏고자 하면 -- 뺏는 사람이 있어서 뺏기는 사람이 있게 된다. 뺏는 사람은 뺏기는 사람의 어려움을 모른다. 배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의 마음과 어려움을 모른다. 가난한 자나 목동들에게 있어 겉옷은 옷인 동시에 잠잘때 덮는 담요이기도 하다. 매우 중요한 생활용품이요 재산이다. 인생에는 억울한 일이 많다. 아무 잘못없이 나의 것을 남에게 뺏기는 가슴 아픈 일이 적지 않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뺏기기만 해야 한다면 너무 불공평하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물질적인 피해를 만회하기보다 가중시키는 말씀처럼 들린다. 불공평한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억울한 피해자에게 손해가 손해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 복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뺏기는 것을 베푸는 것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이미 뺏겼어도, 또 지금 뺏기는 상황에 있어도 생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생각에 의해서 뺏기는 것이냐 베푸는 것이냐가 결정된다. 생각에 의해 심는것이 될수도 손해로 끝날 수도 있다.
억지로 오리를 가는 것 -- 가기 싫은 길을 고통스럽게 오리를 가는 것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십리를 가는것을 비교할 때 어느 길이 힘든 길이며 어느 길이 쉬운 길일까? 아마 고통스런 오리 길은 십리 길 이상으로 멀고 힘든 길이겠지만 즐거운 십리 길은 오리도 안 되는 짧은 길일 것이다. 오리 길도 감당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십리 길 이상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 최소한의 고생도 감당 못해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고 최대한의 고생을 능히 감당해내는 사람이 있다. 어려서부터 고생한 사람이 있고 어른이 되서야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고생이 고생스런 사람이 있고 고생이 고생 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다. 고생은 육신을 훈련시키고 정신을 훈련시킨다. 체력과 정신력은 반드시 고생이라는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 오리 길도 못가는 사람이 있고 오리 길은 겨우가는 사람이 있고, 오리는 물론 십리 이상을 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느 수준에 속하는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반드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가장 힘든 과정을 거친 사람이 가장 쉬운 삶을 살 수 있고 가장 쉬운 과정도 거치지 못한 사람은 가장 힘든 인생을 살게 된다.
마이너스 인생, 플러스 인생 -- 십자가 원리는 결과적으로 더하는 플러스 원리다. 세상 방식은 결과적으로 빼는 마이너스 원리다. 십자가 원리는 역설적인 원리다. 살려고 하면 죽어야 한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칠수록 죽게 되고 죽으려고 할수록 살게 된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게 된다.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목숨을 잃고자 하면 얻는다. 빼기를 하면 플러스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원리이며 더하기만을 원하는 세상 방식은 결국 제로로 끝나는 인생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인데 세상 방식은 주지 않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기를 기뻐하기 때문에 받게 된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하는데 세상 사람은 높아지기 위해 낮아지지 않고 남을 끌어 내리기 때문에 너도 나도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남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 자신도 높아진다. 낮은 자세로 남을 높이는 사람은 이미 남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낮아지는 것은 높아지기 위한 기초 공사이다. 낮아질수 없는 사람은 높아질 수도 없다. 비우는 것은 채우기 위해서다. 채우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비우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