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짜리 1mm오차

Mar 25, 2012

우리나라 산업화 초기에는 믿기지 않는 기적같은 창업 스토리가 많다. 그중에 하나가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 창업 일화는 유명하다.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이 조선업에 진출하고자 할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 문제였다. 정주영 회장은 몇몇 국가와 끈질긴 협상 끝에 영국과 스위스에서 1억 달러의 차관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수주 실적을 요구했다.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지폐와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 들고 그리스로 날아가 선주인 리바노스 회장에게 유조선 2척을 수주했다. 그후 2년3개월 만인 1973년 울산 조선소를 완공했고 완공식은 처음 수주한 배 2척의 명명식과 함께 거행됐다. 조선소 건설과 동시에 배를 진수시킨 일은 세계 조선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기적 같은 창업 배경을 가진 현대중공업은 지금까지도 기적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뿐만 아니라 해양 플랜트 분야에서도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다. 해양프랜트는 해상에 설치되는 구조물로 종류에 따라서는 유조선이나 화물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플랜트도 있다. 현재 만들고 있는 프로젝트 가운데 호주 LNG 플랜트같은 경우는 길이 80m, 폭 45m, 높이 50m짜리 모듈 51개를 제조하는 초대형 플랜트 프로젝트다. 언뜻 보면 아파트 건설을 위해 철근 공사를 벌이는 모습과 비슷하다. 현장 책임자 전명우(55) 기정(技正·생산기술직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 보여주는 높이 10m 정도 올라간 4호 플랜트 모듈의 오차 검사 중간 결과표를 보면 '+1' '0' '+1' '+1'…. 암호문 같이 나열된 숫자를 보게 되는데 단위는 놀랍게도 ㎜다. 발주처에서 파견 나온 감독관들이 중간 공정이 설계 도면과 일치하는지 주요 연결 포인트를 정밀 계측해 오차 ±1㎜의 합격 판정을 내렸다. 1만㎜(10m)짜리 기둥을 올리는 과정에서 설계도와 높이 오차가 1만분의 1이란 얘기다.

고르곤 해양 플랜트 모듈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차 검사를 받는 연결 포인트는 20만 곳이다. 이 중 단 한 곳이라도 설계 도면과 오차가 최대 허용치(±6㎜)를 넘어선다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공사는 전면 중단된다. 이 플랜트는 현대중공업이 오일 메이저 셰브론으로부터 2009년 20억6000만달러(약 2조4000억원)에 수주했다. 1㎜ 오차에 2조원대 공사 성공 여부가 판가름나는 셈이다. 이 초정밀 작업을 총관리하는 사람은 엔지니어인 전명우 기정으로, 사내에서 '50조원의 남자'로 불린다. 35년간 해양 플랜트 프로젝트만 50여건을 담당해 왔다. 건당 10억달러 규모로 계산하면 50조원 이상의 해양 플랜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 경험을 가진 현장 엔지니어는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

전 기정은 자기 기술에 대해 "구조물을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설계도와 비교해 ㎜ 단위의 오차를 최소화하는 정도(精度) 관리"라고 말했다. 전 기정은 현장에서 철강재 마킹·절단·용접·설치 등을 벌이는 현장 엔지니어 200여명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총지휘한다. 작업장 내에서 그는 왼손에 TRS(휴대폰처럼 생긴 작업장 내 주파수공용통신), 오른손에는 설계 도면을 들고 있다. 9m짜리 블록 2개를 용접으로 서로 이을 때 각 블록별로 설계 도면과 오차가 각각 +3㎜, +5㎜로 계측이 됐다면? 이때 전 기정은 가차없이 두 번째 블록 담당자에게 5㎜ 길이를 절단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3㎜를 남겨놓는 이유는 용접하면 온도 변화로 철강재 길이가 3㎜ 안팎 줄어드는 것을 감안한 조치다. 결과적으로 용접 후 설계 도면과 오차를 ±1㎜ 안팎으로 줄일 수 있다.

전 기정은 "조(兆) 단위 공사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고 말했다. 전 기정과 같은 전문 엔지니어의 오차 관리는 최근 불어닥친 해양 플랜트 수주 붐을 이끌었다. 김정생 해양사업본부 상무는 "해양 플랜트에서 한국 조선 기술이 뛰어나다는 얘기는 바로 오차 없는 구조물 제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총수주액 198억달러 중 114억달러가 해양 플랜트(드릴십 포함)였다. 올해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빅3의 전체 수주에서 해양 플랜트 비중은 7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달러 박스' 조선업의 주력이 일반 선박에서 해양 플랜트로 이동하는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셈이다. 해양 플랜트를 정밀하게 제조해야 하는 이유는 이 설비가 석유와 천연가스 등 고가(高價)의 인화성 성분을 다루기 때문이다. 해양 플랜트는 바다 밑에 설치되기 때문에 수리가 불가능하다. 단 10㎜만 설계 도면과 오차가 나도 폭발 등 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 기정은 강원도 평창에서 고교 졸업 후 1976년 현대중공업 생산기술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처음 한 일은 '마킹(marking)'이었다. 설계 도면대로 철강재에 절단선을 긋는 일을 말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도면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19세 청년은 가로·세로 5m짜리 도면을 집에 가져와 밤새 설계 영어를 익히는 피나는 노력으로 끝내 최고위직인 기정으로 올라섰다. 억대 연봉으로 생산기술직 2만여명 중 최고 대우를 받는다. 중국·일본 조선이 해양 플랜트에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도 전 기정과 같은 엔지니어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배경·학벌이 없더라도 내가 맡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지금까지 내 실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돼 왔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가 되는 길은 스스로에게 달린 것이다. 무엇에 있어서 최고냐가 중요하다. 설계도와 실제 제작된 구조물의 오차 한계 1mm를 절대 준수해야만 가능하다. 설계도 기준 준수에 있어서 세계 최고여야 하고 1mm의 오차를 허용치 않는 기술정밀도에서 최고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과 가정과 국가의 설계도이다. 개인, 가정, 국가의 견고성은 하나님의 설계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달려 있다. 1mm의 오차를 소홀히 하는 것은 50조의 거대한 성공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말씀 하나를 무시하는 것은 내 인생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