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 II
하나님이 뜻, 마귀의 뜻 -- 살아가는 삶의 환경이 항상 행복한 상황에 있지만은 않다. 쉬운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고 기쁜 일보다는 괴로운 일이 많은 것이 인생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공식적인 사역의 시작을 알리면서 선포한 천국 헌장인 산상수훈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 어떤 인생인가 하는 것이다.신앙생활을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팔복의 말씀에 나와 있다. 마귀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인간을 향해 시도한 모든 일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인간을 불행의 길과 사망의 길로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이미 지옥이 결정되어 있는 마귀는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으로 동행하는 것이 한결같은 목표이다. 팔복에 나타난 복의 의미에는 염려와 두려움에서의 자유함과 신들의 행복에 동참하는 특권을 말하고 있다.
염려의 원인(영적원인)-- 근본적으로 염려(걱정,근심)와 두려움은 악한 영적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악한 영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무서움을 준다.(히2:14-15, 롬8:15) 사망으로 위협하여 두려움에 붙잡히게 한다. 무서움에 종노릇하게 만든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싫어하게 만든다. (엡2:2, 롬1:28)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롬14:17) 마음에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지 않는다면 상황이나 환경적 요인을 찾기 전에 영적인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내안에 역사하는 영적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 내 마음 밭에 좋은 씨가 자라고 있는지 가라지가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염려의 원인(혼적 원인) -- 악한 영의 역사가 결정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원인이 있다. 혼적인 문제다. 마음의 문제가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에게 권면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너희를 향하여 우리 입이 열리고 마음이 넓었으니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요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 6:11-13) 문제의 크기가 있고 마음의 크기가 있다. 문제크기에 비해서 마음의 크기가 작으면 염려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문제보다 마음이 크면 염려하지 않게 된다. 문제의 크기가 문제라고 하는 사람은 마음이 작은 사람이다.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나의 마음의 크기보다 작은 문제만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히려 내마음보다 큰 문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마음을 키워야만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마음의 연단 --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목표는 우리 마음이다.'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 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느니라' (잠17:3) 인간이 죄를 짓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생명(영)에서 단절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혼)도 파괴되었다. 마음이 부패한 것이다.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육신이 부패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명이 단절되는 순간부터 마음은 부패된 것이다. 연단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진단이 되고 마음의 문제점이 나타난다. 찌그러진 마음은 펴져야 하고, 쓰러진 마음은 똑바로 세워져야 한다. 깨어진 마음은 잘 때워져야 한다. 구멍난 마음은 메워져야 한다. 예수님에 의해서만 고쳐지고 치유되어진다. 마음의 변화는 필수적으로 연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히5:8-9)
염려의 치명성 --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염려는 단순한 인격적 문제나 신앙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치명적 성격을 갖고 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한다면 불순종이다. 십계명을 어긴 것과 염려를 어긴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어겨도 되는 말씀이 있고 어겨서는 안 되는 말씀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 번 도둑질한 것과 여러번 도둑질한 것을 비교하여 죄의 경중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염려는 다 맡기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벧전5:7)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맡기지 못하는것은 불신앙을 말한다. 염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증거가 되고 불신앙의 증거가 되는 치명성을 갖고 있다. 염려는 할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절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귀의 공격방법과 공격목표 -- 마귀는 우리를 공격할때 문제를 통해서 환경적으로 공격하고 염려를 통해서 마음을 공격한다. 우리 삶의 현장에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는 배후에는 악한 영의 역사가 개입되어 있다. 욥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환경을 공격하고 마음을 공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환경이 우리의 삶을 침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상태에 의해서 삶의 침몰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물 가운데 지날지라도 불 가운데 지날지라도 침몰되거나 타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 그렇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떠난 후에는 전혀 보장이 없다. 환경이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남이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남이 내 운명을 결정한다면 너무 억울하다. 다행히 내가 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열쇠를 맡기셨다. 마음의 열쇠를 잠기는 쪽으로 돌리면 잠기고 열리는 쪽으로 돌리면 열린다. 그 결정은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