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기뻐하라 III
기쁨의 대상 --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싫어하는 것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하려면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안된다. 싫지만 해야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싫지만 기쁘게 할 수 있을 때 성공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무엇을 기쁘게 추구하느냐가 나의 운명을 결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운명이 남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남을 원망하는 습관이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사는 사람은 분명히 생명과 축복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명의 반대, 축복의 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과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기 원하신다. 그분이 제시하시는 삶의 기준은 생명과 축복의 기준이다. 나의 삶의 종말(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현재 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추구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선악과는 죽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말씀하셨다. 아담은 그것을 좋아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유익과 남의 유익 -- 행복한 사회, 행복한 가정을 위한 기본원리가 있다. 자기의 기쁨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삶을 사느냐 상대의 기쁨을 추구하는 이타적인 삶을 사느냐의 문제가 있다. 신앙윤리는 물론 사회윤리에서도 나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질서를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말하며 법치주의는 개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권리주장은 의무 감당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의무를 무시한 권리주장은 불법이다. 의무 감당은 상대방의 권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권리주장은 상대의 권리를 존중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인류 종말의 특징은 극단적 이기주의에 의한 자기 파멸에 있다. 상대의 파멸이 자신의 성공이라는 생각이 인류 사회의 공적이다.하나님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으나 육체의 기회로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5:13-15)남의 유익이 전제되지 않으면 나의 유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악인과 선인의 같은점,다른점 -- 사람(선인,의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자기에게 유익한 사람에게만 잘하고,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준다면 선인과 악인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워하는 사람까지,유익하지 않은 사람까지,싫어하는 사람까지 기쁘게 여겨야 악인과 다르다는 것이다. 악인과 의인의 차이는 기쁘지 않은 사람까지 기쁘게 여기느냐 아니냐에 있다. 피해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상태에서 핍박한 상대를 향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상대에 대한 나의 악한 대응을 합리화 하고 정당화 한다.하나님은 악한 자에 대한 보복을 합법화도 정당화도 인정치 않으신다. 원인에 관계없이 나의 반응 자체를 문제 삼으시는 것이다. 악한 원인이라 할지라도 대응자체는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악한 대처는 상대방을 심판하는 것이며 나의 속성 역시 악하다는 증거이다. 비록 억울할지라도 심판 자격은 하나님께만 있다.
상반된 기준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준과 사람이 기뻐하는 기준이 다를때 어느 기준을 따를 것 인가 두가지 기준이 일치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다를 경우, 어느 기준을 선택할 것인가?나는 선한 일로 생각하나 하나님은 악한 일로 보실때, 나는 의로운 일로 생각하나 하나님은 불의한 일로 보실때, 나는 유익하게 생각하나 하나님은 해로운 일로 보실때, 나는 싫어 하는데 하나님은 좋다고 하실때, 나는 희생으로 보나 하나님은 유익하다고 하실때,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왔다고 하시면서 다섯 중에 둘과 셋이 셋과 둘이 분쟁하며 아비와 아들이 어미와 딸이 며느리와 시어미가 분쟁하게 하기위함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인간관계까지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를 물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좋아도 하지 않는 결단, 싫어도 하는 결단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나 자신의 생사화복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해 결단할 수 있는가?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순종과 복종의 결단의 연속이다.
영의 기준,육의 기준 -- 기쁨에는 영의 기준이 있고 육의 기준이 있다. 영의 기쁨과 육의 기쁨은 상반된 관계에 있다. 영이 기쁘면 육은 괴로운 일이 된다. 영이 괴로운 일이면 육은 기쁜 일이 된다.영을 위해 유익한 일이면 육은 싫어하는 일이 된다. 육이 사는 일이면 영은 죽는 일이 된다. 육의 생각이 죽어야 영의 생각이 산다. 나의 뜻을 포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 나의 뜻을 포기하느냐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느냐의 선택은 평생의 갈등이다.나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나의 뜻도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지고 반대의 경우는 둘다 잃게 된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서 과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었는지 나의 뜻이 이루어졌었는지 냉정히 분석하여 분명한 결과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이 결과가 불분명하면 미래를 불분명하게 살게 된다. 될 것 같아도 나의 뜻대로의 삶은 결국 안 되는 삶이고,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대로의 삶은 되는 삶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은 기쁨의 결과가 기다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