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마6:30-33)
염려하지 않는 존재와 염려하지 않는 존재 -- 먹고 사는 문제(육신의 생존문제)때문에 염려하는 존재가 있고 염려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 먼저 새와 꽃 같은 비인격적 피조물과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 인격적 존재인 사람과 비교할 때 염려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비인격적인 피조물인 새와 꽃은 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격적 존재인 사람은 염려한다. 누가 행복한 삶을 살고 누가 불행한 삶을 사는것인가? 사람이 만물보다 존귀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사람중에서 다시 염려하는 사람과 염려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이방인과 하나님의 자녀다. 이방인(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염려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자녀는 염려하지 않아야 한다. 염려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다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다르다. 구원받은 사람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않는다. 염려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제문제가 걱정꺼리가 된 것은 범죄 후 저주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평생 풀어야 하는 숙제이다. 구원은 이 숙제를 푸는 것이다.
이방인과 하나님의 자녀 -- 생존 보장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이 있다. 본문에 따르면 이방인은 생존 보장이 없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버지인 자녀된 사람은 생존 보장이 있다.자동적으로 자녀는 아버지에 의해 생존 보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생존에 대한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생존에 대한 염려는 이방인에게 해당된 것이다. 육신의 생존 문제는 평생의 숙제다.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자신이 풀어야할 생존문제와 평생 씨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근본적으로 해결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한다.이방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해결해야 하고, 자녀는 하나님이 해결하신다.자녀는 이미 평생의 숙제를 해결하고 사는 삶이라고 하면 자녀 아닌 사람은 평생 애써도 풀 수 없는 숙제를 안고 사는 것이다.구원은 내세의 문제와 현실의 문제 모두를 해결 받는 것이다. 육신의 문제는 별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육신의 문제 해결을 통해서 구원에 대한 현실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존을 확인하는 것이다.
믿음이 적은 자와 큰 자 -- 자녀 가운데서 생계 문제에 문제가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가?본문에서의 지적은 믿음에 있다. 믿음이 적다는 것이다. 새와 꽃도 하지 않는 염려를 하는 것은 믿음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믿음의 점검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와 비교하는 것이다.문제보다 크면 큰 믿음이고 문제보다 작으면 작은 믿음이다. 문제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크기가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문제보다 작은 믿음은 하나님을 문제보다 작게 여기는 것이다. 반대로 문제보다 큰 믿음은 하나님을 문제보다 크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문제보다 크신분으로 확신한다면 문제의 크기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하나님의 요구는 오직 믿음이다.믿음이 하나님을 얼마나 크신 하나님으로 믿느냐가 중요하다. 오직 믿음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와 나중First (첫째와 둘째) : 33절에서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우선순위의 첫째 의미는 첫째의 중요성을 말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나 하나님은 항상 첫째에 위치하신다. 십계명의 첫째 위치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은 언제나 첫째이다. 하나님의 일이 첫째, 두번째가 나의 일, 하나님의 물질이 첫째 나의 물질이 두번째이며 하나님의 시간이 첫째 나의 시간이 두번째여야 한다.첫번째는 하나님의 것이요,하나님의 위치다. 다른 것이 첫째가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것이 하나님의 위치에 있으면 우상이 된다. 우상은 절대 용납이 안 된다. 하나님을 첫째로 섬기는 사람을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신다.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이 최고로 존귀한 인생을 살게 된다.
먼저와 나중Front(앞과 뒤) : 하나님이 나의 앞에 계시느냐, 나의 뒤에 계시느냐? 내가 하나님을 따라 가느냐, 하나님이 나를 따라 오시느냐. 하나님의 위치와 나의 위치가 앞이냐 뒤냐가 매우 중요하다.내가 하나님을 따라 간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길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내 뒤에 계시다면 조건에 관계없이 길이 없는 삶이다. 구름 기둥이 내 앞에 있으면 길이 있지만 내가 구름 기둥 앞에 있으면 길이 없는 삶이다. 인생은 길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처음이요 마지막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반복이 안 되는 길이다.구름 기둥이 보이면 하나님이 내 앞에 계신 것이요 구름기둥이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 뒤에 계신 것이다. 하나님을 뒤로 하고 가는 방향은 정확하게 하나님과 반대 방향이다. 그 방향은 생명이 아닌 사망의 방향이다.
먼저와 나중Follow(따라서) : 사람이 비인격적 피조물과 다른 점은 삶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 산다는 것이다.비인격적 피조물은 생존 자체가 목적이지만 인격적 피조물인 사람은 생존보다 고귀한 목적때문에 산다.인격적 존재라 할지라도 구원받은 사람의 목적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목적이 다르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땅에 속하여 육신을 위한 삶을 산다. 영혼을 위한 삶이 있고 육신을 위한 삶이 있다. 영혼을 위한 삶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고 육신을 위한 삶은 물질을 따라가는 삶을 산다.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느냐, 육적인 가치를 추구하느냐의 두 가지 삶이 있게 된다. 사람에게 끌려가면 사람문제 해결 안 되고, 물질에게 끌려가면 물질문제 해결 안 된다. 하나님을 따라가야 육신의 문제가 해결된다. 육신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뒤로 하면 육신의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