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을 넓게 열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 --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람이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람은 인생이 광야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 자체가 광야이다. 흙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 가능성이 없는 상태이다. 흙에 하나님이 생명을 넣어 주셨기 때문에 비로서 존재 가치와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된 것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도 하나님없이 살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때가 온다. 바라기는 그 때가 죽음 이전이 되기를 소망한다. 죽음 이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이 하나님없이 살 수 없음을 일찍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살아있는 것도 아니며 살아야 하는 의미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생명이며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는 성공은 불행이다. 한계에 부딪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광야는 세가지가 없다 -- 광야에는 확보된 양식이 없다. 매일 양식을 받아야 한다. 광야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농사를 지어 필요한 양식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양식은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물질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광야에는 확정된 길이 없다.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다.매일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가야만 길이 있다. 인생도 길이 없는 길을 가는 것이다. 가야할 길을 답사하여 확인하고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생은 일방통행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길을 가는 것이다. 광야에는 확정된 집이 없다. 매일 옮겨야 하기 때문에 정착할 수가 없다. 인생은 나그네이다.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다 영원한 집으로 옮기는 것이다. 육신의 장막에 영원히 머무는 사람은 없다. 육신의 장막도 나의 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만이 영원한 집이다.
광야에서 있어야 하는 세가지 --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계신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세가지 조건이 있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광야에서 믿고 의지할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밖에 없다. 열악한 상황때문만은 아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광야에서의 생존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뿐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도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요 길이다. 말씀에 의해 만물이 창조되었다. 모든 존재의 본질이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말씀에 의한 존재만이 실상이요 말씀을 떠난 존재는 실제하지 않는 존재(허상)와 같다. 생명값을 지불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면 생명값은 얼마일까?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다고 하셨다.생명값은 누구도 지불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거저 주셨다. 값을 지불할 수 없음을 아시고 거저 주셨다.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것은 감사뿐이다.죽도록 감사할 뿐이다.
만나와 말씀의 필연적 관계 -- 본문에서 '입을 넓게 열라'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채우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말씀을 채우라고 하신다. 말씀이 생명이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육신의 양식인 만나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을 훈련시키신다. 말씀대로 해야만 만나가 해결되었다. 철저히 말씀이 만나와 직결되어 있다. 말씀대로 하면 양식이 있었고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양식이 없었다. 철저히 말씀대로 해야 한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필연적인 만나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얻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육신의 생존을 위해 양식이 필수적인 것 처럼 영적인 양식이 필수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말씀이 아니면 인생은 생존(구원)이 불가능함을 실제 만나를 통해 가르쳐 주신 것이다. 만나의 생명성이 말씀의 생명성이요 하나님의 생명성이다.
만나로 인한 착각 -- 만나를 처음 먹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양식이 땅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알았으나 하늘에서 내려 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기적이요, 맛 또한 꿀섞은 과자 맛(출16:31)으로써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만나의 맛이 느끼한 기름 섞은 과자맛으로 변한 것이다.(민11:8) 정확히 말하면 만나의 맛이 아니라 사람의 입맛이 변한 것이다. 입맛이 변할때이 현상은 만나에 대하여 불평과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감사의 대상이었던 만나가 원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만나의 변질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변질 문제인 것이다.양식이 없을 때는 만나가 감사한 것이었으나 만나가 풍성해진 이후는 불평의 대상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의 조건이 되느냐 불평의 조건이 되느냐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에 달렸다는 증거이다. 만나에 대한 불평의 시작은 그들 가운데 섞여사는 무리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주의 해야 한다.
네입을 넓게 열라 --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인 만나에 대한 감사가 언제까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가 광야 생활 성패를 결정한다. 처음에는 감사했으나 끝까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생존은 광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광야에서 끝난다. 그러나 끝까지 감사했던 사람들은 광야를 통과하고 가나안에 들어간다. 감사가 광야 끝까지 지속될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지속되어야 하고 믿음은 말씀의 순종으로 나타나야 한다. 말씀 순종에 의해 날마다 만나를 누릴수 있고 따라서 은혜 베푸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할수 있는 것이다. 은혜가 지속되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감사이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환영하며 영광돌리는 것이요 원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이 아닌 모욕을 돌린다면 얼마나 치명적인 잘못을 하는 것인가?끊임없이 감사하여 영광을 돌리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