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를 지으라 (4) (방주의 구조)
방주를 지으라(방주구조) (창6:13-16)
거대한 방주(거대한 공동체) -- 많은 사람들이 방주와 관련하여 갖는 가장 큰 의문은, 어떻게 하여 방주 하나에 전지구의 모든 생물을 다 실을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방주의 규모에 대해 살펴보면, 방주 길이는 풋볼 경기장의 1.5배이며, 높이는 3층 건물보다 더 높다. 용적을 계산해보면 11,600제곱미터이며 화물차량 522대의 용적과 맞먹는다. 현존하는 육상동물의 종류는 총 17,600종에 달하는데, 노아에게 나아온 기준으로 계산하면 45,000마리가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의 평균 크기는 양종류보다 작다. 그렇다면 표준화차 1량이 대략 240마리의 양을 운반할 수 있다고 볼 때, 방주는 125,280마리를 실을 수 있다. 따라서 방주는 45,000마리의 동물과 노아의 식구와 필요한 식량, 방주에 있는 동안 번식할 동물까지 살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 은 용의주도하시며 실수가 없으시다. 노아는 다양한 크기와 성향의 동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다양한 내부 시설이 필요했을 것이다. 동물들은 미처 몰랐지만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그들의 삶도 예비하셨다.
조직의 기본질서 -- 방주는 텅빈 상자나 바구니가 아니다. 많은 동물들의 다양한 필요를 감안한 생활공간이다. 거대한 공간이 세분화된 구조로 되어 있었다.방주 내부의 기본 구조를 나눌 때, 수직적 기준과 수평적 기준에 의하여 나눈다. 수직 구조는 상중하 삼층의 구조이 고 수평으로는 좌우로 칸을 막아 많은 방을 만들었다. 조직에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상하가 있고 좌우가 있다. 나를 기준해서 위가 있 고 아래가 있다. 또 왼편에 있는 사람이 있고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이 있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성공적 삶의 지혜요 기본도리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절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자기만 아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남을 배려하고 베푸 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상하관계와 좌우관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때에 따라 입장이 바뀐다. 상하가 좌우가 바뀐다. 바뀌었을 때에 주어진 위치에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적응하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의 위치가 궁극적으로 자 신의 선택과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치 분별과 준수 -- 사람은 물론 모든 사물은 주어진 위치와 자리가 있다. 모든 존재의 존재적 성공은 위치 파악과 준수다. 개별적으로 탁월한 실력과 능력이 있다해도 위치를 지키지 않으면 전혀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기 위치 파악을 정확히 한다. 구원받은 삶의 특징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의해 사는 것이다. 구원 전에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살았지만 구원 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에 의해 산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노아 앞으로 나왔다. 모여든 생물들은 노아의 지시에 따라 하나 하나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주 안의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방주 안에 있는 모든 동물들 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주어진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모두가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각자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위치를 지키는 질서가 무너지면 전체가 혼란해진다. 일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각자는 자신의 희생을 각오하고 위치 를 지켜야만 다같이 살 수 있다.
수직관계와 수평관계 -- 인간 사회는 철저한 조직 사회이다. 사회가 조직으로 이루어진 것은 생존을 위한 기본원칙이다. 필수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조직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신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생명의 단절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유지는 생명의 유지다. 특히 인간관계가 갖는 중요성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가 사람에 대한 자세로 나타난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과는 달리 방해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수직적인 하나님 관계와 직결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필연적인 인간 관계를 통해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시키고 유지하게 하신다.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요 지극히 적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마25:40)'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하겠느냐?'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위치의 절대성과 상대성 --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혈육관계에서도 인생을 대신 살아 줄수가 없다. 낳아준 부모도 자식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다. 도움은 가능하지만 대신은 불가능하다. 위치는 바꿀 수없는 절대성을 갖고 있다. 부모의 위치와 자식의 위치를 바꿀 수없다. 목자의 위치와 양의 위치를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의 위치와 사람의 위치를 바꿀 수 없다. 인간이 가장 어리석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바뀌지 않고 바꿀 수없는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의 시초적 근본원인이다. 천사장이 하나님의 위치를 찬탈코자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위치를 찬탈코자 했던 악한 영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도록 부추긴 것이 죄의 출발이다. 대신할 수 없는 속성 때문에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가장이 위치를 이탈하면 가족이 피해을 당한다. 목자가 위치를 이탈하면 양이 불가항력적으로 피해를 당한다. 각자가 위치를 사수하는 것이 피차를 지켜주는 최선의 사랑이요 배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