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꾼

Sep 13, 2015
주일대예배
구절: 
고전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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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수희 목사님

하나님의 일꾼(고전4:1-2)

종(둘로스) -- 노예의 일반 명칭이다.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통상 명칭이다. 노예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스스로 택한 직업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된 신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의한 누구의 종이냐이다. 종에게 없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소유권과 선택의 자유이다. 종은 생명조차도 주인의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모든 시간과 임무도 나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인에 의해 결정된다. 평생의 수고와 헌신이 당연한 의무이다.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됨을 포기하고 자기를 비우고 땅에까지 낮아지 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삶이 종의 삶이다. 이미 종은 모든 것을 주인의 소유로 바쳐진 삶을 사는 것 이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던 그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사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이다.

종(헤페르타스) -- 노예 가운데서도 주어진 일에 따라 차별이 있게 된다. 특히 '헤페르타스'로 불리는 노예는 명칭의 의미대로 "배 밑창 에서 노젖는 노예"이다. 노예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중세 시대의 선박은 바람의 힘이 아니면 사람의 힘으로 움직 였다. 특히 전투함은 수많은 노예가 배 밑에서 노를 저어 움직였다. 도망하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묶인채 노를 저어야 했던 노예는 배가  침몰하는 경우에 대부분 배와 함께 수장되고 말았다.임무를 위해 주어진 자리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노 젖는 노예 만큼 기막힌 운명 도 없을것이다.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종이야말로 예수님의 표상이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구원받 은 자의 절대적인 증거가 있다. 하나님의 교회와 운명을 같이할 수 있는가?

일꾼(디아코노스) -- 스스로 헌신을 결단한 일꾼이 있다. 신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일꾼의 호칭으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세운 일꾼들을 말한다. 누구의 강요나 이기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과 몸된 교회를 위하여 스스로 헌신하는 일꾼들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강요나 불가피성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기에 더 욱 값진 헌신이다. 하나님의 축복과 하늘나라 상급은 바로 이런 일꾼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일꾼들은 자신을 나타내거나 칭찬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의 은혜에 대한 넘치는 감사로 말미암아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 결코 불평도 원망도 자랑도 실망도 하지 않는다.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로 족하다.

품꾼(미스디오스) --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일꾼을 품꾼이라고 한다. 생계비 조달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임금이 절대적인 목적이 된다. 임 금 보장이 안되면 절대 일할 수 없다. 철저히 물질적 수입을 목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보다도 물질적 이해 관계가 생명이다. 심한 경우는 윤리 도덕적 양심도 저버릴 때가 있다. 물질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비극도 일어난다.세상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믿는자는 달라야 한다. 신앙생활은 품꾼이 아니라 일꾼과 종으로서의 삶이어야 한다. 신앙생활의 타락은 목적이 잘못되는 데서 시작 된다. 구원의 감격에서 비롯된 충성과 헌신이 아닌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충성일 때 괘도를 벗어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상관이 없다. 잘못된 것도 아니다. 생계를 위한 행위를 전혀 탓할 필요도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교회생활에서는 다르다.

일꾼의 기준 (운명을 같이 하는 자) -- 본문에서 언급한 일꾼은 '헤페르타스'이다. 배 밑창에서 노 젖는 노예를 말한다. 하나님의 일꾼, 교 회의 일꾼은 주님과 운명을 같이하는 자, 세우신 교회와 운명을 같이하는자이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셨다. 그 증거 가 몸된 교회이다. 교회의 기초와 반석이 되셨다. 그 위에 우리의 인생을 믿음으로 세워 나가는 것이다. 기초와 건물, 포도나무와 가지, 양과 목자는 공동 운명체이다. 이해관계에 의한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구적인 생명의 관계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과 구원받은 것을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수님과 생명적 관계라고 한다면 교회와도 생명적 관계다. 교회와의 관계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일치한다. 교회와의 관계가 예수님과의 관계다.

일꾼의 기준(마음을 바친자) --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사유 때문에 또는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얼마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인생에 있어서 불가항력적인 혁명적 사건이 생명을 거는 결단을 하게 한다. 주님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 마음을 완전히 바친 사람이 주님과 운명을 같이 한다. 나 자신을 통제하는 영혼이 주님께 붙잡힌 상태에 있게 되면 삶 전체가 주님의 지배를 받게 된다. 가장 성공적인 삶은 혼동과 혼선과 갈등이 없는 사람이다. 갈등과 혼동과 혼선은 환경적인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다. 내 마음에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증거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일사분란한 순종과 복종에 의해서만이 형통한 인생이 가능하다. 일사분란한 순종은 주님과 일치된 마음에 의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