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연습 불행해지는 연습
행복해지는 연습 불행해지는 연습
어떤 왕이 훌륭한 음식의 맛에 감탄하여 주방장을 불러 칭찬했다.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음식 맛을 만들어 냈는가? 그 비결이 뭔가?” 주방장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오늘 가게 주인이 아주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제공해 주어서 음식이 맛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한 것이 아닙니다." 왕은 가게 주인을 불렀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좋은 물건을 제공했느냐고 물었다. "저는 장사꾼일 뿐입니다. 농사 지은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지 내 공로가 아닙니다." 왕은 농부를 데려다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느냐고. 그리고 그런 탁월한 기술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햇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비가 안 와도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햇빛을 주시고, 단비를 주시고, 적당한 기후 주시고 내게 건강 주시고, 만 가지 은혜를 주셔서 거둔 것입니다. 저는 농부입니다. 저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만일 모든 것이 내가 땀 흘린 수고의 대가라고만 여기는 보상적인 생활 철학 속에 살아간다면 그 인생에는 감사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일이 내가 수고해서 내가 거둔 결과라고 한다면 감사가 있을 수 없다. 사실 이런 공로주의적인 세계관에 매여 사는 사람은 감사보다는 언제나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된다. 이루어진 결과에 늘 만족함이 없고 수고에 비해 대가가 적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부의 마음은 겸손하다. 땀 흘려 수고했지만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결코 결실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한다.(딤전1:15) 지나친 겸손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심판 받았어야 할 죄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은 분에 넘치는 축복이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였기 때문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한 욕구 충족으로 인한 감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절대적인 감사이다. 오늘 신앙인의 진정한 감사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은 십자가의 은총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믿음의 뿌리이며 감사의 뿌리이며 축복의 뿌리이다. 모든 일이 감사이며 모든 상황이 감사이다. 감사는 어떤 삶을 살게 하는가?
감사는 행복의 뿌리가 된다.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고,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이다'라는 말이 있다. 또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원망의 문으로 나간다'라는 말이 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는다. 씨로 말하면 감사는 감사의 씨가 되고 곡식은 곡식의 씨가 되고 가라지는 가라지의 씨가 된다. 불행은 불행의 씨가 되고 행복은 행복의 씨가 된다. 인생 자체가 열매이며 씨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열매가 되고 미래의 씨가 된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다. 감사는 기적의 펌프이신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과 같다. 그래서 주님은 그 작은 오 병 이어를 손에 드시고 축사 즉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린 것이다. 거기에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난다.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기적을 일으키는 결정적 동기가 되는 원인적 행위가 있음을 보여준다. 내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것을 또한 주님의 손에 올려드릴 때
그 자체를 영광과 특권으로 아는 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크신 은총과 축복과 기적이 주어진다. 나의 감사와 나의 믿음이 원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를 위해 성령의 지시에 따라 마게도니야 지방에 도착하여 기도처를 찾다가 귀신들려 점치는 자를 치유하게 된 것이 문제가 되어 고소를 당하고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저들은 찬송과 감사를 드린다. 그때 지진이 일어나며 감옥이 지진에 의하여 다 열려 버린다.
감사가 원망과 불평의 감옥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감사가 원망에 갇히면 하나님을 가두어 놓은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약속 관계에 있다. 순종에는 반드시 축복으로 약속을 지키셔야 하고 불순종에는 반드시 저주로 약속을 지키셔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는 약속(말씀)에 묶여 있다. 하나님도 우리도 약속을 벗어날 수 없다. (히6:13-18) 하나님 자신을 걸고 맹세로 보증하셨기 때문이다. 어떠한 문제와 환경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묶이지 말아야 한다.
감사가 묶이지 않는 한 우리를 묶을 자가 없다. 감사가 마르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풍성함이 마르지 않는다. 인생 전체를 완벽하게 인도하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은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광야에 있어도 감사가 마르지 않으면 그의 삶에는 무한한 은혜의 오아시스가 넘치게 되고 누리게 된다. 광야에 있느냐 푸른 초장에 있느냐가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가 있느냐 없느냐가 생사와 행불행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