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시대를 사는 자세
환난 시대를 사는 자세 (왕상17:1-9)
성경의 두 가지 내용 – 성경은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말씀과 사건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사건화 되기 때문이다. 천지 창조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 ‘ 말씀에 의해 보이는 만물이 창조된 것이다. 말씀은 사건을 입증하고 사건은 말씀을 입증한다. 말씀이 가시화 된 것이 창조를 비롯한 모든 사건이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마찬가지다.
말씀의 세가지 기능 – 말씀은 모든 일의 기준이 된다. 과거에 대하여는 분석의 기준이 된다. 과거를 정확히 분석해야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 바른 기준에 의한 평가와 분석이 바른 원인을 규명하게 된다. 말씀은 현재의 선택 기준이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에 따라 이미 결과가 선택된 것이다. 선택이 인생이다. 선택의 기준이 이미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말씀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시대 분별 – 성경은 구약 곳곳에 종말 현상이 소개되고 있다. 인류는 창조 때부터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최종적 종말을 준비하게 하는 배려가 인류 역사 시작부터 등장한다. 노아 홍수 사건, 소돔 사건, 여리고 멸망 사건등 많은 사건들이 종말의 예표로 등장한다. 길을 가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어디쯤인가? 지금 있는 곳을 모르면 길을 찾기 어렵다.
시대 분별 –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계시록에서 끝나는 것이 인류 역사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역사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마24장 8절에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재난이 세계화 될 때 그것이 종말적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인류는 세계화 되어있다. 세계화의 구조 안에 갇힌 인류는 모든 사건이 세계적인 영향을 준다. 마24:8에 세계적인 재난이 종말적 재난의 시작이라고 정의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종말적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상황 분별 – 종말 시대의 시대적 상황의 특징이 있다. 가치와 기준의 전도 현상이다. 진리와 비진리,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이 바뀌어진 상태, 정상과 비정상이 바뀐 상태, 성경의 기준과 가치가 변질되고 전도된 현상이 만연된 시대가 종말 시대이다. 기도의 기준이 ‘쉬지 말고’에서 ‘쉬어 가면서’로, 기쁨의 기준이 ‘항상’에서 ‘가끔’으로 감사의 기준이 ‘범사’에서 ‘특별한 일’로 바뀐 것이다.
상황 분별 – 시대적 상황의 특징이 있다. 종말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본주의 신앙의 보편화와 신본주의 신앙의 쇠퇴이다. 신앙 생활과 종교 생활을 분별하지 못하고 종교 생활을 신앙 생활로 착각하면서 착각을 전혀 모른다.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기독교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이 종말의 특징이다. 종교 생활로 이론적 구원을 구원으로 아는 왜곡된 교인이 대다수를 이루는 시대가 종말 시대이다.
사건 분별 – 말씀이 사건이 되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정확히 분석할 수가 있다. 인생의 현장에는 언제나 사건의 현장이다. 사건이 하나님의 불기둥 구름 기둥 역할을 한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 말씀에 의하여 분석하여 원인을 밝히고 결과를 확인해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갈 수 있다. 들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도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야 말할 나위가 없다.
역할 분별 – 하나님의 명령은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역할과 말씀을 받는 사람의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하는 일이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범위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구분되어 있다. 사르밧 여인이 해야할 일은 한 움쿰의 가루를 드리는 것이고 3년반 가뭄 동안의 양식 해결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다. 그릿 시내가로 가는 것은 엘리야가 해야 할 일이고 양식을 공급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었다.
역할 분별 –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하시고 우리에게는 가능한 것만을 지시하셨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 발생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불가능한 것은 하나님의 몫이고 가능한 것은 우리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우리에게 감당하기 원하시는 사명이 되고 그것이 순종의 수단이 되고 믿음의 행동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가루 한 움쿰으로 마지막 식사를 해야 하는 기구한 상황에 처한 여인의 운명이 영광스런 운명으로 바뀌는 것은 가루 한움쿰의 용도가 마지막 식사 용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용도로 쓰임으로 영광의 기회가 된다.
역할의 목적 – 역할 분담이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명령이 있다. 그 명령에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이 사명적 역할이다. 역할이 보잘 것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심으로 위대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손에 옮겨져 쓰임받는 존재가 될 때 그 역할은 하나님 영광을 증명하는 역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