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당할자 없으리니(수1:1-6)
히브리서11장(믿음장)은 믿음의 조상들에 대하여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승리하는 인생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며, 패배하는 인생은 세상을 감당치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며, 그래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은 절대승리, 절대형통의 삶입니다. 정복하는 삶을 사는가, 정복 당하는 삶을 사는가 점검해봐야 합니다.
이 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 본문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에 대한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정복의 시작은 일어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일어남과 관련하여 세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남이 일으켜야 하는 사람, 혼자 일어나는 사람, 남을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일으켜주어야 하는 사람은 못 일어나는 사람이며, 잘 쓰러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태함, 심약함, 의타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못 일어납니다. 잘 쓰러지는 사람은 시험 잘 드는 사람, 상처 잘 받는 사람,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인생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야만 합니다. 도움받는 인생 아닌 도움주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혼자만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일어서야 합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그 가정이, 그 사회가, 그 교회가, 그 민족이 강한 것입니다.
이 요단을 건너 - 인생의 진로에는 필연적으로 장애물을 만나게 되어 있고, 필수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성공과 승리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연단과 훈련의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애물을 통과하면서 두 가지가 확인됩니다. 문제를 통하여 나 자신에 대하여, 또한 하나님에 대하여 확인됩니다. 나의 믿음이 확인되고, 하나님의 약속이 확인됩니다. 믿음의 유무는 문제를 통하여 확인되고 하나님 말씀의 신실하심은 사건을 통해 확인됩니다.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신8:16).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넌 사람만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고, 함께 부활하는 과정을 거친 사람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 인생의 행선지는 내가 정한 땅(장소)이 있고, 하나님이 정하신 땅(장소)이 있습니다. 사람의 계획에 따라 사는 인생이 있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는 인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든 안하든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사느냐 의식하고 사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시고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이 지정하신 시간과 장소를 벗어난 사람을 책임지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지시)에는 지정된 시간과 지정된 장소가 있습니다. 지정하신 장소를 외면한 요나는 풍랑을 만났고, 인위적으로 장소를 바꾼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이 죽는 불행을 당합니다. 자기 뜻대로 떠난 롯의 말로와 하나님 뜻대로 머문 아브라함의 결과는 행불행과 흥망으로 갈립니다. 반석 위에 집과 모래 위의 집은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의 문제입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과 해지는 편 대해까지 - 축복에 있어서 예정(예배)된 축복과 누리는 축복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나(만민)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 있으나 누구나 구원받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예비된 축복의 땅이지만 모두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땅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약속으로 주어졌으나, 각자의 발로 밟는 만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평생토록 승리와 형통이 공평하게 약속되어 있으나, 누리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천국은 안일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인생의 승리와 축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와 땀과 눈물의 소산입니다. 땀 흘린 소득과 불로소득이 가치와 보람에 있어서 결코 같지 않습니다. 길에서 주운 돈과 땀 흘려 번 돈의 가치와 보람이 같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