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빈들이요 때도 저물었으니 - 잎이 무성하고, 꽃이 만발하며 열매가 풍성했었으나, 지금은 황량한 벌판으로 변한 그곳에서 빛을 잃은 태양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땅거미를 깔고 누울 때 오천 명이 넘은 많은 군중의 배고픔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 졌습니다. 군중을 해산 시키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대하여, 예수님은 시키지 말고 직접 먹을 것을 주시고 지시하십니다. 종일 굶어 배고픈 것은 예수님도 제자도 군중들도 매한가지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유식한자나 무식한자나, 남녀노소 누구나 같은 입장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언제나 석양이 짙은 빈 들판에 섰을 때 존재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떡을 위해 살았느냐, 살기 위해 떡을 취했느냐, 결국 최종 도착지점은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존재의 목적 - 종일 굶어 허기진 석양에 소유의 위기가 존재의 위기로 다가 왔을 때 나의 존재 목적은 무엇이었는가를 묻게 됩니다. 한 개의 떡이 나의 목적이었는가? 나는 왜 존재 하는가? 내 가정은, 내 교회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존재 이유를 모르면 참새와 사람이 전혀 차이가 없는 것 입니다. 존재목적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의 존재 목적은 창조주에 의해 주어집니다. 참새는 창조주의 뜻을 모르나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규명되어야할 문제가 존재이유입니다. 빈 들판에서 다 같은 입장에 있지만 군중을 떡을 위해 존재하고, 제자는 예수님의 명령을 위해 존재합니다.
존재 가치 - 나 한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불과 몇십불 어치의 무기질 원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한 끼의 식사에 목숨이 달려 있는 인생이야 말로 한 끼 식사 값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도시락 한 개)가 그대로 소년의 손에 있었다면 글자 그대로 한 끼 식사로 끝났을 것이나, 예수님 손에 전해 졌을 때 오천 명을 먹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물질이라도 누구에 의해 쓰임 받느냐에 따라 가치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해 쓰임 받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한 끼의 식사의 가치로 끝날 수도 있고, 오천 명을 살리는 가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전 인류를 살리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존재 보장 -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최초의 오병이어만 귀중한 것이 아니라, 다 배불리 먹고 남아 열두 바구니에 담겨 있는 떡 하나하나도 동일하게 귀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귀중히 여기시나 피조물 된 우리는 그렇게 여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손에 맡겨진 인생은 소중히 여김을 받고 그의 삶은 주님의 보장 안에 있게 됩니다. 주님께 맡겨진 인생은 빈들에서도, 해 저문 때에도 오천 명도 오만 명도 제한 없이 보호받습니다. 마지막 떡 한 개도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지시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존재 포기 -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오병이어의 양이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전부를 바친 소년의 마음에 있습니다. 가치 소유를 바치는 공로에 감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을 보고 계십니다. 나를 포기하고 나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는 바침은 자기 공로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를 포기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 포기 없는 행위는 종교행위에 불과 합니다. 자기를 포기 했을 때부터 신앙생활은 시작됩니다. 바친 것 때문이 아니라, 나를 포기 한 것 때문에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