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가운데서의 고민
부자의 실수 - 인생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 할 수 있습니다만 실수에는 돌이킬 수 있는 실수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있습니다. 일시적 실수와 영원한 실수가 있습니다. 부자의 삶을 보면 그의 모든 관심은 육신적 쾌락을 누리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는 관심이 없고, 일시적인 이 세상에 모든 관심을 쏟았습니다. 영원한 가치를 외면하고 썩어질 육신적 가치를 위해 살았습니다. 존귀한 인생의 가치를 외면하고, 거지 나사로의 헌데를 핥는 개와 같이 천박한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영원한 시간을 무시하고, 유한한 육신의 시간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인생의 참된 목적을 잃고, 목적 아닌 것을 위해 살았습니다. 육신적인 것을 잃는 실수는 일시적 실수지만, 천국을 잃는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실수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오해 -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오해의 함정에 빠지게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들의 보편적인 주장은 천국을 보이지 않는 내세의 천국은 부인하고, 지상천국만을 고집합니다. 영적 천국을 부인하고, 육적천국만을 주장합니다. 지옥에 관해서도 육신을 묻는 무덤 혹은 남은 가족의 선행에 의해, 또는 받은 고통의 분량에 의해 정한형량이 끝나는 세상감옥 수준의 개념으로 거짓 말 함으로써,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천국과 지옥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육신적 세상 적 욕망을 위해 살도록 마귀는 오늘도 속이고 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과 지옥을 아예 무시하게 하거나 오해하도록 만들어 모든 사람을 지옥가게 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입니다.
지옥 - 하나님의 존재는 온 세상 사람이 만장일치로 부인해도 부인되지 않고, 존재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두 눈을 가리고 세상이 없다고 주장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말씀은 단도직입적으로 지옥과 천국의 실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실제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막9:43에 범죄 하는 손을 찍어 버리고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막9:48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어떠한 무지도 어리석음도 영원한 실패의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무지와 어리석음은 영원한 후회와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 얼핏 보면 부자는 있는 자요, 거지(나사로)는 없는 자로 단정할 수 있습니다. 부자는 없는 것이 없이 풍부한 인생을 살았으나 그의 문갑에서 구걸하는 거지(나사로)는 가진 것이라고는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고름 냄새가 고약한 병든 몸 뿐 이었습니다. 인생살이는 있는 자도 없는 자도 더 갖기 위한 끝없는 경쟁의 숙명적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가져야 하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눅12:16-21에서 어리석은 부자의 예를 통해 진정한 소유는 물질 아닌 생명(영생)임을 가르쳐 줍니다. 생명이 있는 자 천국을 소유한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요, 생명이 없는 자는 모든 것을 잃은 자입니다.
믿음의 출처 - 지옥에 있는 부자는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부탁하기를 거지(나사로)를 자신의 가족들에게 보내어 지옥과 천국이 있음을 증언해 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세상에 있는 선지자나 주의 종들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살아 돌아온 자의 증언도 믿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요20:29)예수님은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가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믿음의 근거는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는 다양한 경로가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말씀에 근거하고 있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