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심든지 ②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천국의 삶은 이 땅을 떠난 이후의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부터 천국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의 삶은 천국적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적 삶의 방식으로, 축복적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믿든지 안 믿든지 모든 사람은 평생 동안 모든 것을 심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믿는 사람만 해당된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둘로 나누면 사망을 심고 사망을 거두는 사람, 생명을 심고 생명을 거두는 사람, 저주를 심고 저주를 거두는 사람 복을 심고 복을 거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 혼, 육을 다하여 전인적으로 심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 자신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지만, 시간 안에 있는 사람을 위해 철저히 시간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시간을 무시하거나 소홀이 하면 하나님의 섭리에서 스스로 소외 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시간 관리는 생명과 축복의 관리입니다. 시간 안에 구원의 기회가 있고 축복의 기회가 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물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는 말이로다.(고후9:6).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생활이 물질축복과 절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많이 심어야하고, 사람을 향해 많이 심어야 합니다. 흩어 구제 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잠11:24-25).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보라(말3:10).
(행동) 내가 모세에게 말한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1:3). 궤줄 맨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수3:15,16). 하나님은 미래라는 가나안 땅을 주셨지만, 밟는 사람에게 밟는 만큼 그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나의 행동과 비례합니다. 내 인생의 성공여부는 내 발바닥으로 밟는 만큼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부지런한 결과를 게으른 사람은 게으른 결과를 거둡니다.
(언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광야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은 두 가지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감사와 순종으로 생명과 축복의 결과를, 원망과 불순종으로 사망과 저주의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대해서도 철저히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전능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시인은 큰 복이요, 큰 영광입니다.
(생각) 우리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3:20).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밖으로 나타나지 않는 마음속의 생각이 생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가볍게 볼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갚으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성령을 위하여 (목적) -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삶은 결국 육적 목적을 위해서 사느냐, 영적 목적을 위해서 사느냐로 결정됩니다. 같은 일을 해도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이 됩니다. 같은 성전건축을 솔로몬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했고, 헤롯왕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했습니다. 성전건축이 한사람에게는 축복이 되었고, 한사람에게는 멸망이 되었습니다. 같은 길(베들래헴)을 가지만 나오미는 경제적 이유에서였고, 룻은 신앙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룻은 훗날 다윗의 조상의 반열에 서게 됩니다.
(방법) 같은 목적이라 해도 방법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해도 방법이 인간적이고 세상 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인간적인 방법(수단)으로 했을 때는 실패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했을 때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목적만 이루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원리로써, 세상만사의 원리입니다.
(기준) 사도바울은 갈1:10에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사람의 기준에 맞춘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일이 아닌 육신을 위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할 때 반드시 복되고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사람에게는 복이 됩니다.
(의지하는 능력) 성전재건의 중단사태로 실의에 빠진 스룹바벨에게 하나님께서 스가랴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 하노니,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점검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 했느냐, 하나님의 힘으로 했느냐. 하나님을 위한일은 하나님에 의하여, 그의 능력에 의지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단지 나를 사용하시는 것뿐입니다. 철저히 그분만이 나타나셔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