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를 세우는 신앙

Sep 18, 2011
주일대예배
이찬용목사님
구절: 
수4:1-7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 시대가 모여 역사를 이루고 다양한 일정이 모여 일생을 이루어 갑니다. 다양한 사건들이 개인의 일생과 민족과 인류의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430년의 애굽 노예생활이 끝난후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은 지난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는 시점이요 가나안 생활의 시작 시점이됩니다. 요단 건너는 사건을 자자손손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집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알아야 합니다. 지나온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연결하는 필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단 건너기를 마치자 이사건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우게 하십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대단한 사건도 있고 시시한 사건도 있지만 하나님의 의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들만한 사건이나 지극히 사소한 사건이나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참새 한 마리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류에 대한 돌보심이 차이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한 말씀의 기념비 -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열두 돌 기념비를 세운 시점은 출애굽 제40년 1월 10일로서 출애굽 시점으로부터 만 40년에서 5일이 모자란 때였습니다. 애굽에서의 종살이도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기간에 끝났고 광야 생활 역시 말씀하신 기간에 끝났습니다. 수 4:19에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간략한 기록입니다만 대단히 중대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민 14:34에서의 예고대로 B.C 1406 년 1월10일 출애굽한 후 40년만에 가나안(길갈) 땅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이 약 500년 전에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약속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 변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이 성취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속된 때와 장소와 사람에 대하여 정확히 성취됩니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사 54:10)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 자체와 같습니다.

모본된 믿음의 기념비 -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길갈에 세워진 돌기둥 기념비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아울러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증거입니다. 이 기념비를 증거로 세우게 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이 돌은 무슨 뜻이냐 묻거든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요단을 건넌 증거로써 하나님 여호와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신 것 같이 요단강도 마른땅을 밟고 건너게 하심으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고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요 가나안 땅 정복을 보증하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의 기념비 역할은 요단강 속에 있던 돌만이 아니라 그돌이 기념비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필수 적입니다. 사람이 주인공이요 돌같은 물질 수단들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요 현장에서 말씀을 실제화 시키는 주역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의 삶은 말씀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이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이 되어야만 합니다.

영원한 기념비인 하나님 - 수 4:23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같았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동일성입니다. 하나님은 40년 전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널때나 지금 그 후손이 요단강을 건널때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손의 능하심이 동일하며 그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불변의 존재이시며 영원한 존재이신 여호와만이 영원한 기념비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영원 불변할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영원 불변 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에 있어서도 하나님 자신을 담보로 보증하는 장면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을 걸고 보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창22:16, 히6:13-17)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창31:49)

승리의 기념비인 성도 - 수 5:1을 보면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 중에서도 매우 용맹한 족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족속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정도였습니다. 430년의 애굽 노예생활과 40년의 광야 생활로 전투 능력이 전무한 오합지졸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전적인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전투력은 무시해도 될 정도였지만 단 한가지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두려워할 존재는 나 자신이 아니라 사단입니다. 상황이 어떤상태에 있다해도 두려워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라 사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에 의한 승리의 기념비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승리는 언제든지 보장 되어 있습니다. 승리의 깃발이 언제나 나부껴야 합니다.